[소리와 울림] 21세기 형태의 군대와 모병제

입력 2016-10-07 04:55:04

영남대학교 국제법 박사. 국방대학교 고위공직자 안보과정 수료. 전 국제법평론회 회장. 전 영남대 법과대학 학장
영남대학교 국제법 박사. 국방대학교 고위공직자 안보과정 수료. 전 국제법평론회 회장. 전 영남대 법과대학 학장

정치권 '모병제 전환' 치열한 공방

국가안보 실질 보장에 논점 맞춰야

군인 역할 줄고 민간영역 확대 추세

미래는 첨단무기 다룰 전문가 필요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진 '모병제로의 전환 여부'를 둘러싼 설전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문제는 정치'경제'사회 등 다방면에서 깊은 논의를 필요로 하지만, "종국적으로 사회적 약자들만이 직업군인으로 입대할 것이다"는 소위 '금수저론'에 막혀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이 모병제 논의조차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무기체계의 첨단화' 내지 '군사 영역의 민영화'라는 21세기의 큰 흐름에 비추어 볼 때, 현실적으로 '모병제로의 전환 논의'가 시기적으로 불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76개국 이상이 징병제를 폐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모병제이든 징병제이든 제3의 대안이든 결국은 개개 국가가 자국의 사정에 맞게 군사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의 기존 군사제도를 한 번쯤 재검토해보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판단된다. 다만 이러한 논의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은 '모병제로 전환 등 군사제도를 변경할 경우, 국가안보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전투에서의 승리라는 것이 '백병전을 통해 적군의 고지에 아군의 깃발을 꽂는 것'으로 묘사되었던 전통적 전쟁은 이미 끝난 지 오래됐다. 1990년 걸프전을 시작으로 무기체계는 축구장 골대를 정확하게 타격할 정도로 고도화'첨단화되었다. 가상의 화면 속에서 게임을 즐기듯 전투를 수행하는 방식의 드론이나 로봇 등 자동화 무기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동시에 '민간군사'안보기업'이라는 사기업이 '직접적 교전'은 물론 '군기지의 건설' '무기체계의 유지' '군사훈련 제공' '군수물자의 조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사적 기능을 대행하고 있다.

나아가 핵무기의 관리를 비롯한 최첨단 F-117 및 B-2스텔스 폭격기의 관리가 민간전문가에게 맡겨지고 있으며, 군 부대의 외곽 경계는 CCTV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군사 영역의 민영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21세기 특징 가운데 하나가 민간기업이 '공공'(public)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존중된다는 관념에서 찾는다면, 아주 자연스럽다. 그것은 정부의 만족할 만한 서비스 제공 실패와 맞물려 민간기업이 고도로 전문화됨으로 인해 나타난 현상인데, '공공'에 대한 관념을 크게 바꾼 이유이다. 공립학교, 공영주택, 대중교통 등에서 잘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오늘날 '공공'이란 '2류' 또는 '값싸다'는 말과 동의어로 통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비추어, "국가만이 국가방위를 독점적으로 수행한다"고 하는 '공공의 독점' 관념이 깨어져 버렸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상 군사 영역에서의 큰 변화는 결론적으로 군인의 역할이 축소되고, 민간전문가의 역할이 확장되는 데로 직결된다. 달리 얘기하면, 21세기 형태의 전투는 특기가 없는 다수 일반 병사보다는 첨단무기를 다룰 수 있는 소수 민간전문가를 더 선호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오늘날 군사 영역의 시대적 흐름이다.

결국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지적한 것처럼, 미래의 전쟁은 최첨단 자동화 무기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몇몇 천재들에 의해 대리전 양상으로 수행될지도 모른다.

21세기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사고로 우리의 국가안보를 보장하겠다는 주장은 어리석다.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여야만 국가안보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동시에 모병제에 관한 논의가 국가의 힘을 쪼개버리는 계기가 된다면, 이것은 더 어리석은 짓이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모병제로의 전환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끝으로 '모병제로의 전환 논의'에 앞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군사 영역의 근본적 숙제는 군인들이 기꺼이 국가를 위해 몸바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군인다운 군인이 많은 군대를 만드는 일은 국민의 사랑과 존중으로부터 가능하다. 그들이 국가에 충성하는 용맹스러운 군인이 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국가의 배려와 국민의 존경을 부여하는 것,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