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 1.5㎞ 鐵들었네
바닷바람이 다가오자 쇠가 스르르 운다. 영일만으로 들어와 갇힌 바람이 속도를 줄여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쇠, 풍경을 살살 흔든다. 갈매기가 날아와 하얀색 풍치를 더한다. 무쇠 작품들 속에 있던 풍경이 하나둘씩 바람에 깼다.
무쇠로 만든 미술 작품들이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곳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옛주소 포항시 두호동, 새 주소로는 해안로 일대 1.5㎞ 구간이 커다란 미술 전시장이 됐다. 40여 점의 작품이 몰렸다.
작품들은 원래 자기 자리였던 양 알아서 해수욕장 주변에 앉아 어울린다. 조깅하는 이들, 애완견과 산책 나온 이들, 데이트하는 이들, 걸터앉아 술 마시는 이들이 제각각 이곳을 이용하듯.
올해는 '철(鐵)의 정원'이라는 주제로 작품들을 모셔왔다. 재료에 철이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였다.
예년과 달리 주재료가 철이 아닌 작품들이 더러 보인다. 대표적인 작품이 '버티기'다. 나무가 주재료다. 나무를 연결하는 고리가 쇠다. 그 덕분에 황소가 버티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타일을 이용한 작품 'Hot-Fun'도 있다. 안락의자 셋이 나란히 놓였다. 도대체 어디에 쇠가 사용된 건지 주최 측에 물으니 작품의 뼈대가 철이라고 한다.
'정원'이라는 주제에 맞는 쇳덩이도 정교하다. 스카프처럼 하늘거려도, 나뭇잎처럼 팔랑거려도 철이다. 소나무에 위태롭게 붙은 솔잎도, 하늘로 떠가는 풍선마저 죄다 쇠였다.
아쉽게도 일부 작품은 5일 포항을 휩쓴 태풍 '차바'에 사라졌다. 이탈리아 작가 마테오 베라의 작품 'New birth, New star'는 바다에 떠있던 작품이었다. 꽃 모양의 대형 스티로폼 조형물은 태풍에 완전히 망가졌다. 작가는 전시 기간 직전 작품을 설치한 뒤 이탈리아로 돌아가버려 주최 측도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이 거리엔 올해 출품된 작품만 있는 게 아니다. 2012년 페스티벌부터 전시된 작품 중 15점 정도가 상설작품으로 남아 있다. 영일대해수욕장 시계탑과 지척인 '오늘도'는 이곳의 터줏대감이 됐다. 2012년 첫선을 보인 뒤 5년째다. 여전히 관람객들의 사진 모델 1순위다.
매년 축제가 끝날 즈음 작품 구입 심의위원회는 작품의 잔존 여부를 정한다. 작품성, 내구성, 안전성 등을 따진다. 올해도 시민들의 호응이 좋거나 작품성이 높은 작품이 남게 될 것이다. 지난해 구입 예산은 2억원이 안 됐다. 심의위원회는 6점을 사들였다. 올해도 비슷할 것이다. 20~25일 사이에 포항에 남을지 여부가 결정된다.
마음이 동한다면 이달 말까지는 포항 영일대로 가야 한다. 1.5㎞ 전시 거리에 40점이 넘는 작품이 늘어서 있다. 천천히 걸으며 감상하자면 1시간 남짓 걸린다. 밤에 오면 더 좋다. 영일대해수욕장에서 보이는 포스코 공장의 야경이 더해 꽤 눈요기가 된다. 대신 바닷바람이 차다. 외투를 꼭 챙기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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