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하나 물으면 열 가지 설명"
서경진(62) 닥터스영상의학과 원장이 환자와 마주 앉아 뇌와 목 사진을 들여다보며 20분가량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친절에 재치까지 겸비한 의사였다. 편두통으로 내원한 여성 환자가 "뇌 MRI로 머리가 좋은지 알 수 있나요?"라고 묻자 "뇌가 깨끗한 걸 보니 총명하네요. 근데 남편분께 잔소리 많이 하겠네"라고 웃으며 답했다. 서 원장은 환자가 궁금해하기 전에 사진을 짚어가며 증상의 원인을 일일이 설명했다. 환자가 한 가지를 질문하면 열 가지를 설명했다. 서 원장은 환자가 웃으며 진료실을 나서는 모습을 본 뒤에야 인터뷰에 응했다.
"한때는 나도 환자에게 '갑질'했죠. 예전에는 증상의 원인과 진단 결과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환자를 보낸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병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부터 모두 설명하고 검사가 필요하면 반드시 환자의 동의를 구하는 게 그의 원칙이다. 서 원장은 "환자가 병원에 기대하는 건 환자로서 대접받는 것"이라고 했다. 변화의 계기를 물으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의사로서 멋있어 보이지 않아요?"
◆멋있는 데 목숨 거는 남자
1980년 경북대 의과대를 졸업한 그는 같은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개원해 성공한 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다. 단국대와 동국대병원을 거쳐 다시 대구로 돌아온 지는 딱 1년이 됐다. 다시 만난 의과대 동기들 사이에서 서 원장은 '젊어서부터 멋짐에 목숨 거는 남자'로 통한다. 병원 행사로 모은 쌀(2천㎏)을 중구청에 기부하는 것도, 함께 일하는 정태균 원장과 함께 모교에 발전기금 1억원을 쾌척한 것도 멋진 면모다. "어린 시절 못생기고 공부도 못해 무시당하며 느낀 열등감을 '허세'로 극복했어요." 그가 장난스레 웃었다.
병원에 값비싼 첨단 검진 장비를 들여 놓은 이유도 "그냥 허세"라고 했다. 서 원장은 "사실 전문 분야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최고가 되고 싶다"면서 "그래서 최신 기기를 사용해 최선을 다해 진료한다"고 했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우리나라 영상의학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프랑스와 캐나다와는 비슷하거나 더 낫습니다."
서 원장은 여러 '멋진 일' 중에서도 '가르치는 일'이 가장 멋지다고 했다. 그는 매주 한 차례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생 4명을 진료실로 데려와 신경해부학을 가르친다. 수업을 듣기 위해 3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열혈 학생들이다. 수업 준비를 위해 휴일을 반납하면서도 보람이 크다고 했다. 그는 "최근 수업에서 가르친 뇌혈관 단면도를 본과 3학년생이 칠판에 그대로 그리더라"며 뿌듯해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따뜻한 의사
서 원장의 취미인 등산과 자전거 타기도 '멋있어 보여서'가 이유였다. 의과대 시절 스승이 심어준 환상 때문에 시작한 등산은 20년이 다 돼간다. 그동안 '뽈레뽈레'(천천히 천천히)를 되새기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킬리만자로 정상 등을 차례로 올랐다. 그러면서도 "동네 앞산이 제일 힘들다"며 엄살을 부린다. 요즘에는 자전거도 탄다. 주말마다 틈틈이 4대강 종주(856㎞)와 국토 종주(633㎞)를 하는데 1년 남짓 걸렸다. "이제는 체력이 달려서 전기 자전거를 사야겠다"는 서 원장은 "동해안 자전거길을 종주하는 게 남은 목표"라고 했다.
등산과 자전거를 택한 이유는 하나다. "둘 다 건강에도 좋고 성취감도 들지만 자연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대하며 서 원장은 자연스럽게 카메라도 들게 됐다. 그는 제주도 자전거길을 종주하며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며 "누군가는 중국의 자연이 최고라지만 내 생각엔 제주도가 으뜸"이라고 평했다. 그래도 그가 꼽은 가장 아름다운 사진은 뇌 MRI 사진이다.
따뜻한 사람 되기. 나이 육십에 서 원장이 가진 꿈이다. 성공한 의사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환자에게 인간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사실 그건 멋있으려고 한 말이고, 아내에게 인정받는 남편이 되는 것이 꿈이에요. 전 국민 통틀어 남편을 가장 무시하는 게 마누라니까." 잠시 망설이던 서 원장이 미소를 머금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기자, 마누라 얘기 빼줘요. 없어 보인다. 허허허."
♣서경진 원장
1955년 대구 출생. 경대사대부고 졸업/ 경북대 의과대 졸업/ 경북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서주영상의학과 원장/ 단국대병원 영상의학과장/ 동국대병원 교수/ 경주동국대병원 방사선센터장/ 닥터스영상의학과 원장/ 대북의과대학교(대만) 객좌교수/ 대한근골격자기공명영상연구회 회장/ 대한자기공명영상의학회 이사
사진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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