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컨(Pelican) 회원이 모였다. 그동안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떠난 사람들이 반이 넘는다. 남아있는 사람도 희수(稀壽)를 넘거나 산수(傘壽)를 넘기다 보니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지는 일이 빈번하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회비를 모아 불우시설을 지원하고 방문해 봉사할 목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펠리컨은 새끼를 돌보는 모성애가 남다르다고 한다. 먹지도 않고 새끼를 돌보다가 결국에는 자기 몸에 상처를 내서 피까지도 내어준다고 하는 희생의 새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희생을 기억하면서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30년 가까이 실천해 왔는데 이제는 자신들이 돌봄의 대상이 되어서인지 격월로 만나도 심드렁한 분위기를 피할 수는 없다.
농경시대의 산골 벽촌에서 궁핍하게 살아온 사람들, 2차 세계대전, 6·25전쟁 등 전쟁의 공포와 굶주림에서도 용케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절약만이 살길이라며 밤낮없이 혹사한 덕분에 오늘 이만큼이라도 일궈 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왕성한 사회생활을 할 때는 십시일반 돈이 모이면 필요한 물건을 마련해 시설에 전달하고 매월 하루씩 봉사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 몸 하나도 돌보기 힘든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얼굴이나 확인하자며 나오라 해도 핑계가 난무하니 안타까움만 더한다.
이제는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핑계를 늘어놓아도 이상할 것도 없고, 전화로 듣는 목소리 하나만이라도 힘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리라. 남을 돕는 것은 미리 다 했으니 저승에 적선은 해 놓았다고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몸 하나 잘 추스르며 옆지기나 자식들에게 짐이 덜 되도록 처신함이 최선이 아니겠는가.
식민지 시대에 태어났고, 전쟁터에서도 용하게 살아남아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가난과 궁핍을 해결한 세대의 주역들이 아닌가. 그러나 풍요 속에 자동버튼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되는 시대에 더욱 고독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세대요, 개중에는 눈칫밥 먹기 싫다고 혼자 사는 세대도 우리가 아닌가. 모임에 빠진다고 흉이 될 것도 아니며 부담이 될 일은 더욱 아니다. 오직 자신들의 일신 안녕과 마음의 평화를 누리면 될 일이다. 그래서 못 나온다는 핑계도 아름다운 것이요, 의미 있는 핑계이리라.
몸은 비록 위축되고 녹이 슬더라도 마음만은 너그럽고 훈훈함을 잊지 않기를 다짐해본다. 그래야 마음의 고통도 덜어낼 수 있을 테니까. 몇 명이 참석하든 모임의 정신은 이어 가자는 다짐을 하며 마무리 지었다.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하면서 돌아서는 뒷모습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