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께 드리는 글

입력 2016-10-01 04:55:05

전북 익산 출생. 전 MBN 앵커
전북 익산 출생. 전 MBN 앵커

대표님, 제 편지를 보십시오. '무수저'로 정치권에 입문해 한 국가의 여당 대표까지 '17계단'을 올라선 대표님의 정치적 성공 신화를 존중합니다. 당 대표 취임 후 수행원도 없이 혼자서 민생 현장을 누비며 국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연일 이어지던 파격 행보에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저는 보수 여당 최초의 '호남 출신' 대표로서 개혁을 이끌어 가실 것이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대표님을 지켜봐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단식투쟁이라니요? 그것도 집권 여당의 대표님께서요! 당내에서도 "단식을 해도 원내대표가 해야지 왜 당 대표가 나서나, 게다가 마지막 카드인 단식을 가장 먼저 꺼냈다"며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단식을 결정한 것도, 국정감사 복귀를 선언한 것도 당과 의논도 없이 혼자 결정하셨다면서요? 정진석 원내대표도 당내 협상 파트너인 본인을 제치고 마이웨이를 하는 대표님을 마뜩잖아 하는 분위기입니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지난 의원총회에서 "정치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라며 일침을 가하지 않았습니까. 취임 두 달도 안 돼서 지도부와 마찰을 빚고 대표로서 위상이 흔들리면, 앞으로 어떡하시렵니까.

여당은 영어로 ruling party, 즉 지배하는 정당이라는 뜻이고 야당은 opposition party, 반대하는 정당이라는 뜻이 있죠. 그런데 대표께서는 rule, 지배해야 하는 자리에서 opposite, 반대만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야당 예행연습을 한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듣는 거 아니겠습니까. 뿌리 깊은 보수진영 인사들과 보수 언론사에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어요. '장관 한 명의 해임안 문제가 민생 현안을 팽개치면서까지 매달릴 중대사인가'라며 청와대 심기만 의식한 명분도 약하고 실리도 챙기기 힘든 싸움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요. 게다가 지금 여론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여당 대표의 단식투쟁에 힐난의 목소리도 들려요. '3분 공개하는 비공개 단식이 단식이냐, 누구처럼 보름달 빵 먹고 있는 것 아니냐, 이정현표 창조 단식이다'라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고요. 일부의 의견이라고 하지만 국민의 반응도 눈여겨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대표님, '단식'을 가벼이 여기시면 절대 안 됩니다. 예비 단식 없이 갑자기 곡기를 끊는 단식을 실시하면 어지럼증과 구토, 두드러기,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동반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3일째가 되는 날 가장 심한 후유증이 따른다고 하는데요,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흐려지는 판단력'입니다. 정신이 흐트러지면서 의도치 않은 발언을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기억나십니까? 지난달 28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미르재단이 단기간에 770억원을 모금했다는 문제에 대해 "세월호 때도 거의 900억원 모금을 금방 했다고 한다"고 말씀하셨죠? 미르재단 모금이나 세월호 모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들려서 불꽃 튀던 국회에 기름을 끼얹으셨어요. 예, 압니다. '단식의 부작용'으로 판단력이 흐려져서 실수하신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단식을 더 이어가시려면 정신 건강도 잘 챙기셔야 합니다.

대표님께서는 지난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 퍼스트! 모든 판단 기준을 국민에게 두고 국민을 제일로 삼고 섬기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국정감사마저 미뤄두고 전투적으로 하고 있는 단식이 과연 국민을 위한 행동인지 묻고 싶습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투쟁을 하고 있는지 국민의 한 사람인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겠다고 하신 대표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겨주십시오. 집권 여당을 이끌어가는 대표로서 보다 큰 국정 어젠다를 제시하여 그 위치와 역할에 걸맞은 신중한 판단과 행동을 하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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