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 범어도서관 사서 윤수진 씨

입력 2016-10-01 04:55:05

숱한 지식 열망 조율…도서관 속의 삶은 '소리 없는 아우성'

범어도서관 윤수진 사서가 국제자료실에서 수서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범어도서관 윤수진 사서가 국제자료실에서 수서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윤수진(34) 씨는 10년 차 사서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경북대 도서관 치의학 분관 근무와 대학 강의를 거쳐 2010년 9월 수성문화재단 사서(7급 정규직)로 입사했다.

현재 대구 수성구립 범어도서관에서 자료실(종합자료실, 국제자료실, 어린이자료실' 유아자료실, 디지털자료실) 관리를 총괄한다. 이 외에도 수성구립 대표 도서관인 범어도서관 소속인 만큼 도서정책 정리 및 전달, 문서행정 관리, 수성 소식지 '수북'(수book) 발행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사서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사서란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해야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공 도서관은 대학 도서관이나 특성화된 도서관처럼 일정한 영역의 구성원들이 이용하는 곳이 아닙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이해와 목표를 갖고 도서관에 오는 만큼 요구도 다양합니다. 각자의 욕망은 다양하지만 예산상 이유로 혹은 다른 이용자와의 관계로 일일이 맞춤 서비스를 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가령 한 대에 1천만원이 넘는 '책 소독기'를 비치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용자도 있고, 조금만 책에 흠이 있어도 야단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다는 사람, 너무 약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난감한 경우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발생합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면 굉장히 힘든 직업입니다."

일반인들은 흔히 사서 업무를 도서 관리(대출'반납 관리), 이용자 관리, 독서문화 프로그램 운영, 수서 정리(책 선별, 구입 및 폐기)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생각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업무는 복잡하고 예민하다.

가령 대출과 반납 업무라도, 무인 대출반납기, 비전문 공공 근로자가 담당할 때와 전문 사서가 담당할 때 서비스 품질은 크게 달라진다. 전문 사서는 이용자의 취향을 알고,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책을 권유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전문가나 무인기는 단순히 책을 내주고 회수할 뿐이다.

수서 정리 역시 제한된 예산으로 해당 도서관 이용자에게 가장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만큼 연구, 분석을 많이 필요로 하는 분야다. 수많은 좋은 책 중에서도 범어도서관 이용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책을 선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한된 예산으로 최대의 서비스를 펼치자면 고민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용자 수가 떨어지고, 도서관은 점점 기능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예전에는 도서관이 책만 보유한 곳이었다면 현대는 책을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로 시민들에게 다가간다. 작가도 많고, 문화예술 영역도 다양하고 넓다. 그중에서 범어도서관 이용자들에게 가장 맞는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윤 사서는 공공 도서관의 존재 이유를 시민들의 지적,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고 지식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데 있다고 정의한다. 따라서 재단법인 수성문화재단 소속 도서관은 영리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 공공 도서관은 이윤이 아니라 지적,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이라는 말이다. 이는 전국 어느 공공 도서관이나 마찬가지다.

15, 16년 전까지만 해도 공공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 책을 빌리는 곳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현대 도서관은 대출과 자료 수집이 한 축을 이루고,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복합공간이 또 다른 한 축이다. 따라서 사서들에게는 책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필수다. 시세 판단도 정확해야 한다. 시민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지금 시민들에게 시급하게 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늘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사서가 전문가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문헌정보학은 학문이다. 세상의 변화와 학문 진화에 발맞춰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단순히 도서관에 취직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말고, 시민들과 함께 시대와 어떻게 발맞추어 갈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늘 연구해야 한다. 평생 공부해야 자기발전은 물론 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에게도 시대와 세상의 변화를 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윤 사서는 4세 남아의 엄마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오후 8, 9시)까지 근무한다.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어린이집이 파하는 오후 3시 30분부터 자신이 퇴근할 때까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를 돌봐 주신다. 다른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범어도서관 역시 월요일 하루 휴관이다. 그래서 사서들은 2주에 한 번 주 5일제 근무를 한다. 그만큼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늘 미안하다.

"지금 근무 여건대로 다른 직장에서 근무해야 했다면 그만뒀을지도 모릅니다. 많이 힘드니까요. 아이한테도 미안하고요. 하지만 도서관은 달라요. 내가 사서라는 자부심, 엄마가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 아이가 나를 만나기 위해 종종 도서관으로 오고, 도서관과 책 속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힘들지만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윤 사서는 "아이는 아직 책을 잘 모르지만, 엄마가 있는 곳에 늘 책이 있고, 책이 있는 곳에 늘 엄마가 있다는 인식 덕분에 책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와 종일 같이 있지 못하지만, 떳떳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사서의 당부 "공공 도서관, 공공예절은 꼭"

공공 도서관은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다. 내가 본 책을 다른 사람이 보고, 내가 쓴 물건을 다른 사람이 또 쓴다. 내가 깨끗한 책과 사물을 이용하고 싶다면 남들도 그렇게 이용할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해야 한다.

자료실에서의 애정 행각, 음식물 반입으로 책에 손상 주기, 불쾌감을 주는 언동은 공공장소를 훼손하고, 서로에 대한 예의와 신뢰를 파괴하는 행위다.

노숙자들도 시민이다. 그들에게 도서관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할 순 없다. 도서관에 와서 신문과 잡지를 보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고, 자기 향상도 꾀할 수 있다. 노숙자에게도 도서관은 필요한 곳이다. 그러나 공공이 개인을 배려하는 만큼 노숙자들도 공공을 배려해야 한다. 냄새를 풀풀 풍기며, 이곳저곳 종일 기웃거리는 행위는 공공의 장소인 도서관의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결국은 노숙자들을 도서관 밖으로 쫓는 구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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