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 요즘 '비상시국'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통과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에 대해 "비상시국에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았다"며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의혹에서 비롯된 국정 비선 실세 논란 등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도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며 여러 의혹을 뭉개버렸다. 대통령은 이전에도 안보 위기, 경제 위기를 거론하는 등 국가가 비상 상황에 부닥쳤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적이 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억지스럽다. 장관 한 명을 해임한다고 해서 비상시국이 악화하지는 않으며 적절한 장관 후보를 새로 내면 될 일이다. 과거에는 야당이 주도한 장관 해임안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장관의 결격사유를 들어 해임을 건의하면 모두 받아들여 꼬인 정국을 타개했다. 독재 권력을 휘두른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그것이 민의를 수용하는 길이라고 봤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장관 해임을 받아들였다. 타당하지 않은 논리를 내세워 거부하는 것은 공감하기 어려우며 정권의 '오기'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에서 비롯된 최순실 씨 비선 실세 논란도 마찬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나서서 짧은 기간 안에 대기업들의 자금 수백억원을 모으고 거기에 최 씨가 관여한 정황이 나타나는 마당에 대통령의 한마디로 뭉갤 일이 아니다. 정권에 불리한 사안이 터지면 권력의 힘으로 억누르려는 것인데 결코 수긍할 수 없고 의혹만 더 커질 뿐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일해재단 비리와 비교해 전경련 해체 주장까지 나오며 여기저기서 개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의혹을 조사해서 잘못된 일은 바로잡고 연루된 인물에게는 합당한 조치를 취해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는 것이 순리이지, 지금 편하자고 강압적으로 틀어막으려 할 일이 아니다.
얽힌 문제들을 풀려고는 하지 않고 '비상시국'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듯하다. 여기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장관 해임 건의안을 상정한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고 새누리당은 국정감사를 거부하고 나섰다. 과한 행동들이다. 민심보다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심기를 살피려는 것으로 집권당의 위치를 망각한 행위다. 폭발력이 강한 '최순실 게이트'에 모이는 초점을 흐리려는 의도이다. 정권 안위를 위해 민생을 내팽개치는 꼼수를 부리는 것인데 제대로 된 정부와 여당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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