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모둠

입력 2016-09-26 04:55:05

교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선생님 한 분이 자기 학교 교감 선생님에게 불려가 '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모둠 학습 대형으로 앉히지 않느냐'는 질책을 듣고서 생각이 많아졌다. 당장 아이들은 모의고사 문제 유형에 적응도 안 되어 있고, 고전문학은 기초도 안 되어 있는데 어떻게 모둠 학습을 해야 하나, 모둠 학습을 하지 않는 게 죄악인가 하는 물음부터 그 상황에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까지, 교감 선생님의 한마디가 불러온 나비 효과는 제법 컸다. 나는 명강사로 이름 높은 선생님들의 수업에서 모둠 학습 대형으로 앉히는 것 봤느냐고 위로해 주고, 모둠 학습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의 소통 속에서 학생들을 위한 길을 찾으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나도 아직까지 찾고 있는 중이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앞에서 이야기한 '모둠'이라는 말이 낯선 말일 수 있다. '모둠'이라는 말은 한자어 '조'(組)를 대체하기 위해 찾은 우리말이다. 1990년대 후반에 국어 선생님들이 '모이다, 모으다'라는 뜻을 가진 옛말 '모도다'와 이것의 방언형인 '모드다', '모두다'를 바탕으로 '모듬' 혹은 '모둠'이라고 하였다. 경상도에서는 '모다 가이고'(모아 가지고)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본형 '모드다'에서 온 '모듬'을 선호했다. 그러나 서울 지역 선생님들이 '모둠'으로 썼기 때문에 지금 현재 '모둠'은 '초'중등학교에서, 효율적인 학습을 위하여 학생들을 작은 규모로 묶은 모임'이라는 뜻으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조별 과제', '1조, 2조'처럼 지금도 '조'라는 말을 사용한다. '조'는 '1번부터 5번까지는 1조, 6번부터 10번까지 2조' 이런 식으로 임의로 묶어 놓은 집단에 어울린다. 이에 비해 '모둠'은 그 어원을 생각하면 학생들이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인, 능동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다. 그렇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모둠'보다 '조'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점수를 잘 받아야 하는 학생은 죽어라 해야 하고, 모둠원 잘 만난 학생은 무임승차도 가능하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하루는 집에 와서 너무 힘들다고 펑펑 울었다. 그룹 댄스, 리코더 합주하기, 릴레이 웹툰 그리기, UCC 만들기 등등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수행 평가는 많고, 또 대부분 모둠별 과제다 보니 잠은 잠대로 못 자고, 취약한 국어와 수학 공부는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딸은 자기가 목표로 하는 대학에서는 예체능 과목이 들어가는데, 다른 모둠원들은 들어가지 않는다고 적극적이지 않아 친구 사이까지 나빠질까 걱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모둠'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둠 학습을 안 하는 것도 학생들을 위하는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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