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흔들고 있는 지진이 자연의 변화로 인해 생기는 천재라면, 미국을 당황스럽게 하는 총기 테러는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 인재이다. 이러한 천재나 인재 같은 재난들은 시간과 장소와 피해 대상자를 예측하기 어렵고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그것이 노출되는 순간 피해가 엄청나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은 재난을 대비하는 최고의 방책으로 대피 훈련을 강조한다.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정규적으로 화재, 지진, 총격사건 등에 대피하는 훈련을 받는다. 또 지역 상황에 따라,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캘리포니아주 같은 곳은 지진 대피 훈련을, 해양지역인 하와이와 플로리다주 같은 곳은 쓰나미 대피 훈련을, 토네이도 다발지역인 중서부에서는 토네이도 대피 훈련을 실시하며, 예상되는 재난을 훈련을 통해 대비한다.
지난 11일 뉴욕에서는 이슬람 테러 단체의 공격으로 수천 명이 희생당한 9'11테러를 애도하는 추모식이 있었다. 15년이 흘렀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많은 시민들은 여전히 그날의 상흔으로 아파하고 있다. 테러 발생 당시, 사건 현장의 기막힌 사연들이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는데, 그중에서도 릭 레스콜라(Rick Rescorla)의 일화는 미국인들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안보담당자였던 그는 자신의 회사가 입주해 있는 세계무역센터를 꼼꼼히 살핀 후, 빌딩이 폭발 테러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9'11테러 발생 전인 1993년 빌딩 지하에서 그의 예측대로 폭발 사건이 일어나자, 그때부터 그는 3개월마다 직원들에게 대피 훈련을 시켰다. 계단과 통로 사이에서 만나서 두 명씩 짝지어 내려가게 하고, 시계로 분초까지 계산하면서 철저히 훈련시켰다. 당시 그의 엄격한 훈련이 업무에 방해된다고 불만을 터트리는 직원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고, 위기 상황을 대비해서 훈련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9'11테러 당일, 세계무역센터의 첫 번째 빌딩이 무너졌지만, 모건 스탠리 회사가 있던 두 번째 빌딩의 안내 방송에서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레스콜라는 그것이 잘못된 판단임을 간파하고, 즉시 확성기와 무전기를 들고 직원들에게 건물을 빠져나가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은 훈련받아 온 통로로 속속 내려갔고 그는 노래를 불러주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는 또 노래 중간,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여보 울지 말아요. 나는 이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해요.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아요.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레스콜라는 2천687명 직원의 탈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남아 있는 직원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쓰러져가는 빌딩 속으로 달려갔고, 곧 빌딩은 무너져 내렸다. 그의 이야기는 '9'11을 예측한 남자'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영국과 미국에 방영되었고, 미국 국토안보국은 재난 시에 탁월한 영웅적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레스콜라의 이름을 딴 상을 수여하고 있다.
예상치 못했던 지진으로 우리나라는 불안한 9월을 보내고 있다.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보여주기 식의 방편과 '괜찮다'는 말로 국민을 달래고, 국민들은 정부의 허술한 늑장 대책을 원망하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지진 사태는 물이 새는 지붕을 그냥 슬쩍 덮어 두는 식의 대책은 곤란하다. 그 심각성을 감지한 만큼, 철저한 대피 훈련을 강구하고, 원전 하나하나 나라 구석구석을 살펴야 할 것이다. 재난을 예측한 남자, 레스콜라가 보여준 성실한 책임감, 선제적 대처 의식,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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