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폭우로 2차 피해] 지진에 놀란 가슴, 폭우로 한 번 더 무너졌다

입력 2016-09-18 04:55:02

진앙지 내남면·한옥 많은 황남동에 피해 집중

경주 황성동 고기환 씨의 가게. 지진에 이은 폭우로 가게가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 사진 이채수 기자
경주 황성동 고기환 씨의 가게. 지진에 이은 폭우로 가게가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 사진 이채수 기자

"엎친 데 덮친 격입니다. 여름 내내 가뭄으로 시달리다 지진이 난 지금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건 또 뭡니까. 어제부터 내린 비로 집이 온통 물바다입니다."

북상하고 있는 제16호 태풍 말라카스의 영향으로 17일 오전부터 많은 비가 내리자 지진 피해지역인 경주에는 예상대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날 경주에는 태풍 영향으로 시간당 10㎜ 이상의 비가 쏟아지면서 호우주의보가 내렸다.

대부분 기와지붕인 경주에 폭우가 쏟아지자 미처 천막을 덮지 못한 집에서는 큰 피해가 났다. 또 일부 벽과 슬라브 지붕이 갈라진 집에도 물이 스며들어 방안과 거실 등이 물바다를 이뤘다.

주민들은 16일 오후부터 세숫대야와 물통 등을 들고 물과의 전쟁을 벌였다.

비 피해는 오래된 한옥이 많은 황남동을 중심으로 진앙지인 내남면 등에 집중됐다.

경주 황남동 첨성대 인근 고기환(76) 씨 가게에는 지진으로 지붕이 떨어져 나간 틈새로 빗물이 스며들어 가게 안 곳곳에서 양동이와 물통으로 빗물을 받고 있었다. 호우주의보가 내려질 만큼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자 이내 물동이 밖으로 물이 흘러내렸고 가게 주인 고 씨는 물을 퍼내느라 큰 고통을 겪었다.

고 씨는 "흘러내린 물로 가게에 진열된 물건이 모두 젖어 큰 손해가 났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황남동 쪽샘지구 내 임순자(77) 씨는 "지진이 난 뒤 지붕이 내려앉아 그 사이로 비가 들어왔다. 집안이 온통 물바다다. 비가 새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잘못하면 집이 무너질까 걱정"이라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임 씨는 지진으로 지붕이 날아간 뒤 동사무소에서 비 피해를 막기 위해 천막을 가져다 줬는데, 천막을 칠 사람이 없어 고스란히 비 피해를 당했다고 했다.

진앙지 내남면과 가까운 황남동 선두마을에서도 17일 피해가 속출했다. 전체 30여 가구 중 절반인 15채가량이 지진에 이어 비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 마을 권영인(78) 씨와 손영철(78) 씨 등은 "16일부터 비가 내렸는데, 17일 아침 동사무소에서 복구인력이 왔지만 이미 물은 집 안으로 다 스며든 상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가 많이 내린 17일 경주시청 공무원과 전문건설인협회 소속 회원 50여 명이 황남동 등 지진 피해 지역을 돌며 집 내부에 비가 새지 않는지 집중 점검했지만 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이 광범위해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피해 가옥 현장 취재를 나간 기자에게조차 "그쪽으로 간다면 천막을 좀 전달해달라"는 부탁까지 할 정도로 심각한 복구 일손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런 가운데 지진 충격에다 호우 피해까지 이어진 한옥가옥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옥전문가 김형주(55) 씨는 "이번 지진으로 용마루와 4곳의 지붕을 받쳐주는 내림마루가 충격이 많이 갔다. 전통가옥은 처음 집을 지을 때 황토와 생석회를 혼합해 기와를 밀착시키는데 지진으로 집이 뒤틀린 것은 물론, 비마저 내려 지붕 아래 황토가 물을 먹었다. 결국 엄청난 하중이 실리게 됐는데 잘못하면 집이 무너져 인명피해가 날 수 있다"며 시급한 정밀진단을 조언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