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문학노트] 안도현 '스며드는 것'

입력 2016-09-18 04:55:02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 어찌할 수 없어서 /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 한때의 어스름을 /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 저녁이야 /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의 전문)

'열흘이 넘었는데 간장게장이 그대로네.' 어제 저녁을 먹고 난 다음 아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평소에 간장게장을 즐겨 먹는데 이 시를 읽고 난 다음부터는 먹기가 버겁다. 그러니 그대로 남을 수밖에. 자신에게는 조금씩 간장이 스며들고 있는데 배 속에 있는 알들에게 이제는 잘 시간이라고 다독이는 위대한 꽃게의 모성애. 이 시를 읽은 인터넷 블로거들의 표현은 '가슴이 순식간에 아려온다', '눈에 간장을 부은 것처럼 눈물이 차오른다', '당장 집으로 가서 딸내미를 꼭 안아주고 싶다', '간장게장을 좋아해서 안 먹진 않겠지만 먹을 때마다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세월호 사고가 생각이 났다' 는 등. 새로운 사물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물을 대상으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가는 시인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에서 따뜻한 마음을 읽어내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능력. '울컥울컥, 꿈틀거리다가, 버둥거리다가, 먹먹해지는' 등, 살아 움직이는 아픈 언어들이 가슴을 후빈다.

안도현의 시는 따뜻하다. 특히 이 시가 실린 『간절하게 참 철없이』라는 제목의 시집에는 음식을 통해 돌아본 잃어버린 추억과 풍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수제비, 무말랭이, 물외냉국, 닭개장, 갱죽, 안동식혜 등등. 멀지 않은 과거에는 따뜻함을 함께했다가 점점 사라져가는 존재들. 사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고 그들과 남긴 기억이다. 시인은 음식을 통해 사람을 불러냄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진정 회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시인도 어느 대담에서 '음식이라는 것은 기본은 미각이지만 음식을 보기 위해서는 시각이 필요하고, 후각도 필요하죠. 음식을 씹을 때는 청각도 필요합니다. 모든 감각의 총결집체가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음식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욕망이 한데 엉켜 있지요.'(『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7년 11'12월호) 라고 말했다. 다른 대담에서는 '지식이 세상을 끌고 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견문과 지식이 때로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않은 일에 활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동심의 일탈 때문이지요. 언젠가 시집 제목으로도 썼지만, 간절하게 참 철없이 사고하고 행동하려는 움직임이 그나마 남아 있는 동심을 유지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채널예스 2014.12.) 라고도 말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행동하는 동심이 바로 세상을 끌고 간다는 것.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인의 언어에 사족을 달다가 갑자기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시의 가장자리에도 다가가지도 못하면서 감히 이런 낙서를 해도 되는 거야? 시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그것이 지금의 내 마음이다. '또 이렇게 수면에 물결을 새기려 대들었구나. 후회는 늘 막차를 타고 오고' 결국은 '풍경이 아려서 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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