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가 새라고?/고선윤 지음/박태희 사진/안목 펴냄
일본에서 길을 몰라 헤맨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친절함에 감탄한다. 웃는 얼굴로 끝까지 말을 듣고 도움을 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선진국민'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 이해관계를 가지고 일본인과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나긋나긋하게 끝까지 웃는 얼굴로 대꾸하고, 때로는 맞장구까지 쳐놓고, 어떤 결정의 순간이 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고 대답한다. 일본인들에게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말은 100% 거절이다.
처음부터 거절할 것이지, 마치 들어줄 것처럼 웃는 얼굴로 다 듣고, 실컷 이야기하게 해놓고는 거절했다는 데서 '알 수 없는 놈들' '일본인은 믿을 수 없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기쿠바리'라는 말이 있다.
상대가 어려워하지 않도록 여러모로 마음을 두루 쓴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은 상대의 속마음을 헤아리고, 상대가 어려워하거나 쑥스러워하지 않도록 그 입장을 살피고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준다. 때로는 과장된 리액션까지 취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말을 들어준다는 것과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별개다. 말을 하는 그 시간에 대한 배려는 철저하게 하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해결에 대해서는 어떤 배려도 용납하지 않는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다른 점이다.
이 책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본에서 살았고, 재일교포라는 수식어를 달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지은이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통해 일본과 한국을 바라본다. 지은이 자신의 개인적 삶이 사회적 삶에 투영된 기록이자, 서로 다른 두 나라 문화를 읽어내고, 그 속에서 융합과 화해를 모색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좋아하든 싫어하든 일본은 비행기로 2시간 안에 갈 수 있는 나라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나라"라고 말한다.
일본인들은 언제나 단정하고 조용한, 그리고 내일을 대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와 전혀 다른 모습도 있다. 지은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TV에 비친 도쿄 사람들은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인과 달랐다. '지진이 발생하면 어차피 다 끝이다. 보험조차 들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듯하게 내일을 대비하는 일본인이 아니라 자포자기 자체였다"고 말한다.
일본 사람들은 좀처럼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는다. 수동적이고 윗사람에게 복종하며,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원전사고 이후 일본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원전사고 1년 뒤인 2012년 7월 열린 '사요나라 원전집회'에는 당초 목표인 10만 명을 넘어 17만 명이 요요기 공원에 모여 사상 최대의 원전 반대 시위를 열었다.
지은이는 "그들의 분노는 자연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원전사고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였다. 까닭에 그들은 신 앞에 무릎을 꿇는 대신 거리로 뛰어나왔다"고 평가한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러일전쟁을 일본이 조선병탄을 위해 일으킨 전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러일전쟁의 원인을 러시아의 만주 지배에서 찾는다. 러시아가 만주를 지배한다는 것은 조선반도까지 진출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일본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러일전쟁을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전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러일전쟁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희석하고, 이후 일본이 시작한 여러 전쟁에 대한 역사관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인들이 과거 침략사를 반성하지 않는 까닭이다. 즉 죄를 짓지 않았는데, 무엇을 왜 반성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책은 지은이의 소소한 일상과 한국과 일본의 유행을 통해 한국을 한국으로 만드는 것, 일본을 일본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278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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