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추석 극장가

입력 2016-09-14 04:55:06

달콤한 '스크린' 데이트, 누구와 보내시렵니까

밀정
밀정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에는 차례를 지낸 후 오랜만에 가족 단위로 회포를 풀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일이 많다. 점차 가족 단위의 영화관람이 보편적인 일이 되면서 추석에는 15세 등급이나 전체관람가 등급 영화가 환영받는다. 게다가 추석과 설은 한국영화 최고 성수기 시즌이다. 이 시기에는 사극이나 시대극, 혹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한국영화가 극장가에 많이 등장한다.

이번 추석에는 어떤 다양한 영화들이 극장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을지 살펴보자. 현재 극장에서 1, 2위를 달리고 있는 시대극의 선전이 추석 연휴에도 쭉 이어질 전망이다.

◆앞서는 '밀정', 뒤쫓는 '고산자' '앨리스' '달빛궁궐'

지난주에 개봉하여 압도적으로 흥행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영화는 '밀정'이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실제로 있었던 폭탄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밀정'은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의열단 단원, 그리고 항일과 친일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한 미스터리한 인물을 중심으로 세련되게 시대상을 묘사하는 스파이 누아르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갖춘 수작으로, 사건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하지만 송강호, 공유, 한지민 등 스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호흡으로 인해 영화를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된다.

그 뒤를 쫓는 영화가 '고산자: 대동여지도'인데 조선시대 지도제작자 김정호의 알려지지 않은 일생을 그려내어 호기심을 끈다. 한반도의 아름다움이 화려하게 스크린에 담겨 있어 풍경을 감상하는 맛이 있다. 이야기의 밀도는 다소 약하지만, 익히 알려진 인물임에도 실상 잘 알지 못하는 위인에 대한 관심으로 꾸준히 관객을 모으고 있다.

지난주에 개봉한 어린이 관객을 노리는 영화들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어 추석 시즌까지 그 여파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디즈니 실사영화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세계관과 기이한 묘사보다는 디즈니다운 어드벤처 오락영화에 충실하다. 한껏 놀라고 마음껏 웃고 나올 수 있는 영화다.

이와 맞대결하는 한국 애니메이션 '달빛궁궐'은 창덕궁에서 펼쳐지는 13살 소녀의 모험담을 그린다. 개봉 전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한다고 떠들썩하게 논쟁 대상이 되었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일명 '궁궐 판타지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장르를 선보이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게다가 훌륭한 영상미가 장점이다.

◆정의의 사나이 변신 이병헌, '매그니피센트7'

추석 연휴에 맞추어 개봉하는 할리우드 대작들의 대결도 기대를 불러 모은다. 이번에 선보일 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모두 고전 명작의 리메이크작이라는 점도 재미있는 상황이다.

먼저 이병헌이 할리우드에서 처음으로 정의로운 역할을 맡은 '매그니피센트7'이 있다. 이 영화는 현재 개최되고 있는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는데, 이병헌이 특별출연한 '밀정'과 어떤 대결을 벌일지도 궁금하다. 영화는 율 브리너와 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1960년도 서부극 걸작 '황야의 7인'의 리메이크작이다. '황야의 7인'은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1954)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으로, 7인의 주인공 중 유일한 동양인 주인공인 이병헌의 활약에 더욱 눈길이 간다. 1897년 평화로운 마을을 무력으로 점령한 악당들로 인해 선량한 사람들이 쫓겨나게 되고,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지켜본 여인이 현상범 전문 헌터를 찾아가 전 재산을 건 복수를 의뢰한다. 이에 7인의 무법자들이 결전을 펼치기 위해 마을로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연하는데, 덴젤 워싱턴, 크리스 프랫, 에단 호크 등이 함께 열연한다. 1960, 70년대 서부극을 즐겨 보던 중년, 노년층에서부터 화려한 액션 블록버스터를 좋아하는 젊은 관객까지, 노스탤지어와 스펙터클을 두루 만족시켜줄 영화다.

◆돌아온 '벤허'와 예술영화 '카페 소사이어티'

또 한 편의 걸작 리메이크인 '벤허'가 온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가 '벤허'인데, 사실 '벤허'는 이번까지 총 4차례 영화화되었다. 무성영화 2편이 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벤허'는 단연코 1959년에 만들어진 윌리엄 와일러 연출, 찰턴 헤스턴 주연작이다. 1959년작은 오스카 역대 최다 수상기록인 11개 부문을 석권한 압도적인 걸작으로, 리메이크작이 1959년작의 명성을 능가할지 궁금하다. 로마제국 시대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유태인 귀족 벤허가 겪는 복수, 용서, 구원의 드라마다. 응당 화제를 모으는 장면은 벤허와 멧살라의 인생을 건 전차 장면인데, 1959년 영화가 실제 배우들과 동물들의 다시없을 경이로운 장관을 만들어냈다면, 신작 '벤허'는 여기에 CG를 가미하여 더욱 스펙터클한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벤허' 역시 1960년대를 기억하는 중년, 노년층 관객의 노스탤지어를 만족시켜줄 것이며, 영화가 가진 솟구치는 아드레날린과 넘치는 스릴로 인해 젊은 관객층에게도 어필할 것이다.

예술영화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미국 인디영화의 거장 우디 앨런의 '카페 소사이어티'가 개봉한다. 영화는 우디 앨런이 사랑하는 재즈의 전성기인 1930년대 할리우드와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그의 영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소재들이 총망라되었다. 영화제작 현장, 맨해튼, 재즈, 유대인 가족, 삼각관계, 어리바리한 남자와 영리한 여자, 갱스터가 뒤범벅된 코미디다. 제목은 고급 나이트클럽에 출입하는 상류층을 뜻한다. 대공황기에 유일한 노다지 산업이었던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배경으로 상류층에 진입하는 것과 진정한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젊은이들의 로맨스를 그린다. 엇나간 인연처럼 꿈도 허망할지 모른다는 노감독의 유머와 여유로움이 영화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든다. 할리우드 청춘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 제시 아이젠버그,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신선한 매력이 화려한 재즈 선율 위로 한껏 발휘된다.

◆아카데미상 휩쓴 '포레스트 검프' 재개봉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재개봉작의 선전이 두드러지는데, 이번 추석에도 눈에 띄는 재개봉작이 기다린다. 1994년에 개봉되어 한국에서 크게 성공했던 로머트 저메키스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포레스트 검프'다. 당시 톰 행크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2년 연속 수상하며 1990년대를 상징하는 미국의 국민배우가 되었다.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비롯하여 6개의 상을 수상했다. 불편한 다리와 남들보다 떨어지는 지능을 가진 외톨이 소년 포레스트 검프가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회의 편견을 딛고 삶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코미디 드라마이다. 당시 존 F. 케네디가 나오는 다큐멘터리 필름 위에 CG의 힘을 빌려 톰 행크스를 합성하여 극의 주인공을 역사 속에 존재하는 인물로 등장시키는 방식은 큰 화제가 되었다. 이후 '효자동 이발사' 등 '포레스트 검프'에서 영향을 받은 영화들이 다수 만들어졌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네가 무엇을 고를지 아무도 모른다"는 명언으로 시작하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명작이다.

역사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시대극, 어린이 관객을 행복하게 할 판타지 영화, 리메이크 대작, 다양성 예술영화, 재개봉 걸작 등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초콜릿 상자처럼 골라 먹는 재미를 만끽할 즐거운 추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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