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2월 숨진 김정일이 사망 두 달 전쯤 남긴 것으로 알려진 '10'8 유훈'이 공개된 것은 이듬해 4월 무렵이었다. 이 중엔 북한 5차 핵실험이란 지금 상황과 맞물려 되새김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먼저 '핵무기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충분히 보유하라'는 유지다. 아들 김정은이 이를 떠받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핵무기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정일은 '6자 회담을 핵을 인정하고 공식화하는 회의로 만들라'며 핵개발 이후 외교 방향까지 제시하고 떠났다.
다음은 '중국을 믿지 마라'는 유지다. 김정일은 "역사적으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고 못 박았다. "현재 우리와 가장 가까운 국가지만 앞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국가"로 중국을 지목했다.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이 유훈은 아버지 김일성과 맥락이 닿아 있다. 김일성은 1980년대 초 "소련은 믿을 수 없고, 중공(지금의 중국)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겉으론 혈맹관계임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을 믿지 않아야 할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김정은이 중국 지도자들의 경고에 아랑곳없이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유지 또한 새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우리에게는 믿을만한 존재인가. 5차 핵실험 이후 또다시 중국이 변수로 등장했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단호한 북핵 반대'를 외치면서도 '모든 당사국의 침착한 대응을 촉구한다'는 양비론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안보리 제재를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면서 북한에 여과 없이 상품을 들여보내는 나라 또한 중국이다.
이러니 북은 중국의 '말'에 상관없이 핵개발을 멈추지 않을 기세고, 중국은 '말' 이상의 제스처를 취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쯤 되면 중국은 '역대 최상의 한'중관계'라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자평과는 달리 지금 한국을 '가장 힘들게 하는 나라'다. '중국을 믿지 마라'는 김일성 부자의 유지는 오히려 우리 지도자들이 새겨야 할 말이 됐다.
미국은 어떤가. 북 5차 핵실험 후 최신예 전략폭격기 B-1B를 한반도에 전개하기로 했다. 다음 달에는 항모 로널드 레이건호도 출동한다.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김정은이 벌벌 떠는 무기'라며 호들갑이다. 하지만 첨단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는 위기 때마다 되풀이돼 왔던 일이다. 미국이 필요하면 전개했다 거둬들이면 그뿐인 무기다. 절대 우리 것이 아니다. 잠시 한반도에 나타났다고 해서 김정은이 벌벌 떨 일도 없고 북핵으로부터 사전에 우리를 지켜 줄 일은 더욱 없다. 현재 북 핵미사일의 유일한 방어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는 사드 또한 마찬가지다. 주한미군에 배치되는 사드는 우리 자산이 아닌 엄연한 미국 자산이다. 스스로 방어 능력을 갖춰야 할 정부는 "땅만 내줄 뿐 돈은 안댄다"며 오히려 사드 반대 민심을 걱정하고 있다.
미국이 핵우산으로 우리나라를 보호한다지만 막상 한국이 핵 공격에 노출됐을 때 핵으로 막아줄 것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다. 이미 사라진 정권과 살아 있는 정권을 두고 자국의 이익을 저울질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이 북에 대해 혈맹관계임을 강조하면서도 철저히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듯 미국 또한 그리할 것이라는 점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안보까지 떠넘길 만큼 미국을 믿어서는 안 될 일이다.
군은 북이 핵 공격 징후를 보이면 평양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큰소리다. 그러나 힘과 정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할 뿐이다. 핵을 쥔 평양이 사라지기 전에 서울부터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우리는 주권의 문제를 두고 중국 눈치를 살피고,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쯤 되면 누군가 나서 한마디 해야 한다. "아무도 믿지 마라."
그래도 남은 김정일의 유언이 있다. '김씨 가문에 의한 조국 통일이 종국적 목표'라는 유언이다. 김정은이 이 유지마저 받들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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