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가 품은 인물 꽃으로 피다]<7>문무를 겸비한 송당 박영

입력 2016-09-13 04:55:02

성종의 눈에 든 출중한 무예…선진관까지 올라 御駕 호위

조선전기의 무신이자 학자인 송당 박영이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후 송당정사를 건립해 학문을 닦았다. 송당 박영의 불천위 사당인 문목사(文穆祠). 송당정사 경내에 있다.
조선전기의 무신이자 학자인 송당 박영이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후 송당정사를 건립해 학문을 닦았다. 송당 박영의 불천위 사당인 문목사(文穆祠). 송당정사 경내에 있다.
송당 박영의 글씨.
송당 박영의 글씨.
구미시 선산읍 신기리 송당정사에 세워진 박영의 유허비. 이 비는 1822년(순조 11년)에 높이 218㎝, 너비 85㎝, 두께 27㎝로 세워졌다.
구미시 선산읍 신기리 송당정사에 세워진 박영의 유허비. 이 비는 1822년(순조 11년)에 높이 218㎝, 너비 85㎝, 두께 27㎝로 세워졌다.

송당(松堂) 박영(朴英)은 정붕으로부터 김굉필의 학통을 이어받았다. 특히 대학의 가르침을 중히 여겨 대학동자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학문은 인간의 삶이 허상보다 실재에 있다는 생각을 집약해 나감으로써 송당학파라는 영남사림의 특출한 맥을 세웠다.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이 되었으나 유식한 군자가 되지 못함을 늘 한탄하였다. 성종이 별세하자 가솔들을 이끌고 조상 대대로 살던 고향 선산 생곡리로 낙향하였다. 낙동강 가에 송당정사를 지어 학문에 정진했으며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정붕(鄭鵬)'박경(朴耕) 등을 사우(師友)로 삼아 대학과 경전을 배워 격물치지(格物致知)에 힘썼다.

◆3살 때부터 활을 쏘던 아이

이조참판 박수종의 집 담장 밖에는 채 익지도 않고 떨어진 감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박수종은 그 까닭이 몹시 궁금하였다. 어느 날, 세 살짜리 아들이 툇마루에 서서 감나무를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시위를 당기고 있는 녀석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더니 담장 너머에서 감이 떨어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그것참, 저 어린 나이에 활을 쏘니 백발백중이구나!' 그 모습이 기이하여 아들의 이름을 영(英)이라 하였다. 박영은 훌륭한 장수가 되어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어린 박영의 당찬 모습을 보며 태종의 손녀인 그의 어머니는 글공부보다 무예에 관심이 더 많은 아들이 늘 걱정이었다.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군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의 부친은 아들의 생각을 존중해 주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던 박영에게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졌다. 그의 아버지 참판공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2년 후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일곱 살의 어린 박영은 할머니의 품에 안겨 그 슬픔을 안으로 삭였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니 무심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장안의 협객이 되어 세상을 떠돌며 슬픔을 잊으려 했다.

그 소문이 성종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성종은 큰할아버지의 딸에게서 태어난 박영을 측은하게 여겨 조용히 궁으로 불러들였다. 왕실의 사람으로 품위를 지키라는 임금의 간곡한 당부를 들은 박영은 지하에 계시는 부모님께 부끄러운 아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박영의 무예가 출중함을 익히 알고 있던 성종은 그에게 나라에 공을 세우도록 명하였다.

1471년 신묘년 성종 2년에 태어난 박영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자실(子實)이고 호는 송당(松堂)이다. 박영의 조부는 안동대도호부사 박철손(朴哲孫)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박수종(朴壽宗)이다.

어머니는 양녕대군 이제의 딸이다. 성종의 사랑을 받은 박영은 무과시험에 장원하며 첫 벼슬길에 올랐다. 1487년(성종 18) 이세필(李世弼)의 막하(幕下)에 있을 때 종사관(從事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91년 원수(元帥) 이극균(李克均)을 따라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였고 이듬해 돌아와서 겸사복(兼司僕)이 되었다. 그해 9월에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유혹에 빠지다

성종의 선전관이 되어 어가를 호위하던 박영은 하루 일을 마치고 퇴청길에 올랐다. 임금의 곁에서 온종일 긴장해야 했기에 퇴청은 속박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늠름한 모습과 수려한 외모에다 화려한 옷까지 차려입었으니 뭇 여인들의 눈길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런 시선이 싫지 않았던 박영은 은근히 그 기분을 즐겼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뒤를 따랐다. 주막으로 걸음을 옮기던 중 어느 집 담장에 엉거주춤 기대고 있는 한 여인과 맞닥뜨렸다. 가린 장옷 사이로 살짝 드러난 얼굴에는 윤기가 흘렀다. 담장에 핀 접시꽃의 붉은 꽃잎 같은 두 볼의 홍조가 무척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는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 소리에 놀라 발길을 재촉했다. 순간, 여인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그를 불러 세웠다. 발목이 삔 듯 걷지 못하는 여인을 어느새 그는 부축하고 있었다. 고통을 호소하며 몸을 숙인 여인의 깊은 가슴골이 아찔하게 드러났다. 연분홍 저고리를 들어 올린 봉긋한 가슴이 그의 몸으로 밀착해 오는가 싶더니 알 수 없는 향내에 정신이 몽롱했다. 그는 여인을 둘러업었다.

여인의 집에 도착하니 그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두 발로 걸어서 나가더니 한 상 가득 주안상을 차려왔다. 잠시 쉬어가라고 속삭이는 여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는 이미 그윽한 여인의 두 눈 속에 빠져 있었다. 아리따운 여인의 시중을 받으며 잔을 비웠다. 여인이 갑자기 주위를 경계하며 목소리를 낮추더니 도움을 청했다.

"도련님, 제발 저를 좀 도와주셔요."

"무슨 일로 이렇게 떨고 있소? 어려워 말고 이야기해 보구려."

"잘못하면 오늘 밤 도련님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허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소녀는 집안이 가난하여 이곳 도적들에게 팔려 왔사옵니다. 여기는 술을 팔고 몸을 파는 곳이 아니옵니다. 사람을 무참히 죽이는 살벌한 곳이지요. 저는 이곳으로 손님을 유인해 술을 잔뜩 먹여야 했지요."

"그럼 몰래 도망가면 될 텐데, 왜 그러지 않았소."

"몇 번이나 도망쳤지만, 다시 붙잡혀 오고 말았지요. 관아에 고발하려 했으나 그자들도 한통속이라 소용이 없었사옵니다. 지금도 분명 밖에서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녀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무사는 정의감에 불타올랐다. 살인의 현장을 수없이 봐 왔을 가여운 여인을 안심시켰다. 자신이 마음에 들어 유혹한 게 아니라는 사실은 섭섭했지만, 의협심이 강한 그는 늠름한 무인의 기개를 알아준 사실 하나로 충분히 그녀를 지켜줄 이유가 되었다. 가늘게 떨고 있는 여인의 어깨를 감싸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찢어진 옷을 본보기로

밤이 이슥하자 천장의 서까래에서 줄이 내려오더니 검은 물체가 움직였다. 무사는 잽싸게 몸을 날려 도적을 쓰러뜨렸다. 여인을 둘러메고 미리 확인해 두었던 얇은 쪽 벽을 뚫고 뛰었다. 뒤쫓는 도둑 떼를 따돌리며 천지 분간도 안 되는 밤길을 뛰고 또 뛰었다.

얼마를 뛰었을까? 구름 속에 가렸던 둥근 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나란히 앉은 여인의 목덜미에 달빛이 내려앉아 가늘게 흔들렸다. 안전한 곳에 그녀를 데려다 주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박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집에 돌아온 박영은 한 여인을 수렁에서 구한 사실을 스스로 대견스러워하며 옷을 벗었다. 그런데 한쪽 소맷자락이 찢어져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무모하게 행동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사건을 계기로 박영은 평생 호화로운 옷을 삼가고 여인을 멀리했다. 또한, 찢어진 옷을 항상 곁에 걸어놓고 마음을 다스렸다. 자녀들에게도 자신의 치부를 보게 하여 본보기로 삼았다.

◆학문을 가까이하지 않음을 후회

훈신 세력을 등에 업고 왕이 된 어린 임금 성종은 학문이 깊고 매우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간 성군이었다. 윗대의 태종, 세종, 세조가 열심히 기반을 닦아놓은 위에 틀을 잡아갔다. 북방을 안정시켰으며 남으로 왜구들을 외교적으로 잘 관리하였다.

나라가 안정되자 성리학을 기본으로 삼아 학자를 등용했다. 박영은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군자가 되려면 학문을 가까이하라는 그 말씀을 듣지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못다 한 글공부에 정진하고자 했다.

1494년 어느 날, 부모님 대신 알뜰히 자신을 챙겨주던 성종 임금이 세상을 떠났다. 주연과 여색을 즐기던 성종 임금은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원자를 낳은 왕비를 폐위한 일로 엄청난 파문을 예상치 못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성종의 뒤를 이어 폐비 윤씨의 아들인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다. 박영은 험난한 미래를 걱정했다. 임금이 자신의 어머니가 사약을 받아 죽게 된 사실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연산군의 폭정을 예견하여 낙향

이런저런 근심을 안은 채 박영이 궁중에서 당직을 서고 있을 때였다. 궐내를 순시하던 중 성종 임금이 애지중지하던 사슴 우리 앞에 서게 되었다. 녀석도 주인의 죽음을 아는지 눈망울이 애처로웠다. 등뼈가 깊게 드러난 몰골을 보니 더욱 안타까웠다.

임금의 부름을 받아 궁에 들어갈 때면, 사슴과 대화하던 성종의 외로움을 가끔씩 보아왔다. '소춘풍'이라는 어느 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오늘은 임금이 아닌 한량의 자격으로 너를 찾을 것이니라" 하며 사슴의 목덜미를 쓰다듬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녀석도 주인 잃은 슬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을까? 동병상련을 나누며 풀을 뜯어 내밀어 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뒤돌아서 몇 발자국을 옮겼을 때였다. '퍽' 하는 소리에 돌아본 박영은 충격적인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화살이 꽂힌 채 녀석은 비명도 없이 고꾸라졌다. 연거푸 화살이 날아들었다. 연산군이었다. 무슨 원한이 그렇게 사무쳤는지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다. 피를 모두 쏟아낸 사슴의 눈이 조용히 감겼다. 검붉은 피는 서서히 번져 연산군의 광기 어린 눈에까지 핏발로 서렸다. 그 모습을 본 박영은 오랫동안 망설였던 벼슬을 내려놓고 가솔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