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신발 벗는 지도자

입력 2016-09-10 04:55:02

어릴 적 기억 중에 신발에 관한 추억이 많다. 가난했던 시절 신발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었다. 고무신을 신던 시절에 운동화를 신은 친구를 보면 매우 부러워했다. 그나마 새 고무신을 신고 오면 그날은 하루 종일 신바람이 났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괜히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새 고무신 자랑을 했었다. 그게 낡아져 구멍이 나면 어머님이 실로 꿰매어 주었는데, 비가 와서 빗물이 고무신 안으로 새어 들어오면 발이 축축해졌기에 아예 고무신을 벗어들고 맨발로 다녔다. 그래서 어릴 적 소망 중의 하나가 새 신발 곧 좋은 신발을 신는 것이었다.

그런데 좋은 신발을 신고 있는 자에게 그 신발을 벗으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더구나 주변엔 그런 신발을 아무도 신고 있지 않고, 신었다 해도 낡은 신발 헌 고무신 같은 신을 신고 있을 때, 새 신발 좋은 신발은 주변의 시선을 끌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남들이 어정어정 걷고 있을 때 그 좋은 신발로 인하여 뛰고 달릴 수 있다면, 그 신발 자체만 해도 리더십의 힘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지도자에게 그 신발을 벗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성경에 보면 '신을 벗으라'(출 3:5)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온다. 고대 이집트 시절 그곳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중에 내린 명령이다. 그 힘든 과업을 맡기면서 최고의 신발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광야를 거쳐 산을 넘고 물을 건너야 할 지형에서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튼튼한 신발이었을 것이다. 최고의 가죽을 구해서 튼튼한 구두를 만들어 신고 백성들 앞에서 '나를 따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좋은 구두를 신고 용맹하게 달려가는 지도자를 보면서 백성들은 신뢰하고 뒤따르지 않겠는가? 그런데 신고 있던 신발마저 벗으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무슨 이유일까?

모세에게 그 신발은 광야에서 살 수 있었던 힘이었다. 당시 모세의 구두는 아무나 신을 수 있던 것이 아니다. 곧 이집트 왕자만이 신었던 최고의 구두였다. 그가 이집트 병사를 죽인 후 광야로 도망쳐 40년간을 살면서 그 신발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이집트 왕자의 신분을 지켜주는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모세의 신을 하나님이 벗긴 것은 이집트 왕자로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었다고 보여 진다. 또 하나의 이유는 당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은 맨발의 백성들이었다. 고대 이집트 시대는 노예가 신발을 신을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그런 이스라엘을 앞에서 이끌기 위해서는 지도자도 맨발이어야 하는 것이다. 맨발의 백성들 앞에 구원자로 나타난 사람이 최고의 구두를 신고 나타난다면 과연 그를 신뢰하고 백성들이 따라나서겠는가?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실 때 사람이 되어 오셨다. 이른바 도성인신(道成人身)하셨다. 유대의 가장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갈릴리의 가장 깊은 골짜기 나사렛 동네에서 자라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셨다. 예수님이 불 마차를 타거나 구름 수레를 끌고 오셨다면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것이지만 지난 2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믿고 경배하는 구세주가 되지 못하셨을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신을 벗는다면 분명히 우리 조국은 달라질 것이다.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의 신발을 보자. 그것이 공동체에 이질감을 주지 않는지? 혹 이집트 왕자의 신발을 신고 이스라엘 앞에 나서고 있는 모양이 아닌지? 맨발의 사람들 앞에 최고의 구두를 신고 앞장서려 하고 있지 않은지? 물론 신발 자체에 문제는 없다. 겸손한 어울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울림과 적재적소의 지혜 이것이 대중을 하나 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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