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40대에 다시 생각하는 보수

입력 2016-09-09 04:55:02

"뭔 소리 하노? 고마 당구나 치러 가자!" 대학시절 동기들이 과(科) 방에서 마르크스 '자본론'을 얘기할 때, "수업시간에나 열심히 해라. 고마 당구나 치러 가자!"고 산통을 깼다.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학생회 쪽 친구들은 "무식한 놈! 머리에 든 게 있어야지"라고 핀잔을 줬다. 그랬다. 경상도 촌놈에다 극단적 보수가 내 정체성이었다. 사실 전공 공부(정치외교학)가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좌파든 우파든 이론은 수업시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대학생들이 진보니 보수니 구분하는 것 자체를 꺼렸다. 대충 '꼴통 보수파'로 불리며, 그렇게 20대를 보냈다.

30대에 들어서는 신문기자가 되어 사회 현장을 뛰어다니며, '건강한 보수'를 지향했다. 뒤늦은 고백이지만 보수진영의 대선후보 이회창 전 총리에게 세번이나 표를 던졌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이 세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진보 정권으로 본다면, 두번의 사표는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왜 표를 안 던졌느냐'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당시 서울정치부 기자로서 이 전 시장의 살아온 길은 적어도 '건강한 보수'는 아니었다고 판단했고, '부패한 보수'는 '무능력한 진보'보다 더 패악이 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이회창 전 총리가 대권 3수에 도전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했기에 대선 삼세판 모두 이 전 총리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이제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2년 전에는 차장 승진을 했고, 올해 초에는 노조위원장이 됐다. '꼴통 우파'인 내가 노조위원장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인생이기도 하다.

이왕 내 정치적 역정을 밝혔으니, 한발 더 나가서 현 시점에서 '보수'를 다시 생각해본다. 세번의 대선에서 모두 사표를 던졌지만, 4년 전에 내가 찍은 한 표는 현 대통령에게 도움이 됐다. '건강한 보수'라고 생각했던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2년 정도 큰 기대를 갖고 잘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내 절망했다.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정책적 결단, 포용력 등을 보면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아예 정치에 관심을 껐다. '친박'에 묶여 여당이 죽을 쒔던 올해 총선과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성주 사드 배치 등을 보면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확신까지 하게 됐다. '이명박근혜'라는 조롱에서 알 수 있듯, 박 대통령은 전 정권의 부패사슬('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에도 칼날을 들이대지 못했다.

이젠 누가 정치색을 물으면 "무당파, 대학 전공은 정치외면학과"라고 말한다. 가족이나 친척이 정치 현안에 대해 물어도, "전 아무 생각 없습니다"고 단칼에 잘라버리거나, 술자리에서도 정치 토크 속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정치 얘기가 계속되면, 애써 화제를 돌리려 애쓰는 편이다.

그럼 40대의 내 정체성은 이제 '보수'를 버렸다고 해야 하나 자문해본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적어도 현 정치판을 보면서, "난 보수 세력"이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대구 출생의 박근혜 대통령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7월 전국언론노조에서 주최한 사드 긴급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해서도, 성주 군민의 뜻을 무시하는 정부의 일방통행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보수'의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대구경북 보수파 일부가 현 정권에 등을 돌리는 이유도 기자와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보수 논객을 자처하는 전원책 변호사(전 자유경제원장)도 요즘 칼럼을 보면, '급진 좌파'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40대에 '보수'를 곱씹어 보면서, 각종 의혹으로 얼룩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청와대가 우 수석을 감쌀수록, 우파는 현 정권과 더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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