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자립해라" 의료재단 "이제 걸음마 뗐는데…"

입력 2016-09-07 04:55:02

위기의 대경첨복단지

대경첨단의료진흥재단의 내년 예산이 대폭 삭감될 위기에 처하면서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의 운영난이 고조되고 있다. 대경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모습. 재단 제공
대경첨단의료진흥재단의 내년 예산이 대폭 삭감될 위기에 처하면서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의 운영난이 고조되고 있다. 대경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모습. 재단 제공
의료기기센터
의료기기센터 '전자파 챔버' 모습.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이하 대경첨복단지)는 대구 혁신도시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05만㎡에 달한다. 2009년부터 2038년까지 4조6천억원이 투입되는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다.

하지만, 대경첨복단지가 조성되고 본격 가동한 지 불과 3년째, 운영기관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의료재단)에 대한 정부의 내년도 예산 지원이 대폭 깎일 위기에 놓이면서 운영난이 고조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는 의료재단이 최소 인건비'운영비로 제시한 221억원의 67%인 148억원만 반영돼 있다. 그러나 이는 의료재단이 당초 소요 예산으로 요청한 490억원의 30%에 불과한 규모다. 정부는 2011년부터 첨복단지 국고보조 비율을 50%로 정해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재단 자립화 시기가 도래했다'며 이번에 또다시 예산을 삭감한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은 예산 삭감의 근거로 2010년 마련한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첨복단지 운영과 관련한 모든 경비는 원칙적으로 첨복단지법인(의료재단)이 자체 충당하도록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예산 삭감은) 의료재단도 이미 다 아는 사항"이라고 했다.

의료재단이 정부의 자립화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면은 있다. 그러나 의료재단은 애초에 첨복단지 자립화에 한계가 많다는 입장이다.

의료재단 관계자는 "신약이나 의료기기 개발은 선진국에서도 대표적인 '롱텀'(long term) 사업 분야인데, 정부가 벌써부터 무리한 자립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이에게 학교 가서 상장 따오라는 격"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의료재단에 따르면 정관상 목적사업에 자립화 관련 규정이 없고, 2010년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계획에 따라 2018년부터 재단이 자립하려면 주무부처의 재단 자립화 추진여건 조성 및 계획 이행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의료재단은 국가 R&D 과제를 수행해도 내부 인건비가 포함돼 있지 않아, 정부 지원 없이는 현실적으로 직원 월급 충당이 어려운 구조다. 관련 법'제도가 정비되지 않으면 자립화에 원천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또한 의료재단 측은 "지난 6월 기재부 측에서 '2025년까지 재단의 50% 재정자립화 계획을 제출해달라'고 해, 중장기 50% 재정자립계획을 수립해 제출한 바 있다. 그래서 올해도 예년 수준에서 부족하나마 예산 지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허탈해했다. 그랬던 기재부가 불과 2, 3개월 만에 내년 국비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것으로 선회한 것이다.

정부가 첨복단지의 기업 지원 성격만 부각시켜 자립화를 무리하게 요구한다는 지적도 팽배하다. 여타 연구기관과 달리 첨복단지에 대해서만 기업들을 상대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화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산 부족으로 저조한 장비 가동률

의료재단은 그동안 필요 예산의 50% 선에서 근근이 지원을 받아왔다. 정원 확보율과 장비 가동률이 저조한 이유로 꼽힌다.

의료재단에 따르면 4개 연구센터가 보유한 1천100억원 상당의 시설가동률은 올해 7월 말 기준으로 평균 42%에 그친다. 신약개발지원센터 73%를 제외하면, 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23%, 실험동물센터 42%, 신약생산센터 31%에 그친다.

의료재단 관계자는 "신약개발지원센터의 장비는 실험실 단위의 소형 장비가 많고, 24시간 자동화 가동이 가능한 장비가 많아 정원 대비 현원이 30% 수준임에도 가동률이 높다"면서 "그러나 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의 장비는 대형 장비가 많고, 요청이 있을 때 전문인력이 직접 수동으로 가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정원 대비 현원은 50% 수준임에도 가동률이 낮다"고 밝혔다.

기기센터의 대표 장비인 '전자파평가실'(전자파챔버) 장비의 경우 56억원을 들여 작년 하반기부터 가동을 시작했지만 현재 가동률은 35%에 그치는 형편이다.

특히 신약생산센터의 경우 제약생산설비이다 보니 기업의 생산 위탁에 비례하는데, GMP 생산 인증을 받은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본격 가동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 예산안은 오는 10월 국회 상임위원회, 11월 예결위원회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이 과정에서 증액을 하지 못하면 의료재단의 삭감 예산은 확정된다. 대구시는 "더 이상의 인건비'운영비 지원은 어렵다"며 지원 불가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의료재단 관계자는 "의료재단은 국가 시책을 담당하는 국무총리 산하의 엄연한 공공기관"이라며 "이번에 예산 확보를 못한다면 재단은 내년에 청산을 고민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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