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심히 살기 위해 우선은 벗어나야 했습니다."
특수공법을 이용한 교량전문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순환(47) 대표. 그는 가족과 함께 떠났던 유럽 여행의 기록을 모아 얼마 전 '나만 믿고 따라와'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전문 여행가도 아닌 그가 여행 서적을 펴낸 이유가 독특하다. 너무나 아팠던 중년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또 가장의 무거운 짐을 앞에 두고 고뇌하는 이들을 위해서다.
이 대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스펙을 가진 중년 가장이다.
계명대에서 토목공학으로 학'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대기업 건설회사 연구원으로 취업했다. 그리고 7년을 다닌 후 퇴사해 퇴직금을 밑천으로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7개월 만에 퇴직금을 고스란히 날리고 '백수' 신세가 됐다. 아내와 함께 뭘 할까 고민하던 그는 부동산의 권유로 고깃집을 열었다.
이 대표는 "고기 피비린내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우연히 식사를 위해 찾은 경기도 분당의 갈비탕 집을 운명처럼 덜렁 인수했다"고 했다. 아파트를 담보로 빚을 내 시작한 고깃집은 주변의 예상을 깨고 돈이 되는 장사가 됐다. 그는 좀 더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해가며 식당 규모를 키웠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한 식당이 문을 열자마자 '광우병 소동'이 터졌다. 손님은 끊기기 시작했고 20여 명에 달하던 직원들의 임금이 체불됐다. 결국 5개월간 월세를 내지 못해 가게는 문을 닫았고 식자재 업체를 비롯한 납품업체들의 빚 독촉이 시작됐다. 3개월간 집 안에만 머물던 그는 결국 엉뚱한 결심을 하게 된다. 10세 딸과 7세 아들, 그리고 아내와 함께하는 유럽 여행. 비행기 티켓은 식당을 운영하며 쌓은 카드 마일리지로 해결하고 마지막 남은 돈 500만원을 환전해 2009년 5월,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 대표는 "출입국 심사를 할 때 세금과 임금 체납으로 출국하지 못할까 봐 가슴을 졸였다"며 "비행기에 타는 순간 극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묘한 기쁨이 밀려왔다"고 했다. 친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국 런던을 첫 도착지로 삼은 그는 차량 렌트비를 지불하고 남은 2천500유로(한화 300여만원)를 들고 45일간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와 체코, 이탈리아 여행을 하게 된다. 유럽 도시를 소개하는 내용은 인터넷에서 보는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얄팍한 지갑을 들고 가족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저절로 진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한국 중년 남성의 슬픔이 묻어 있다.
45일간 일정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날, 이 대표에게는 다시 현실이 시작됐다. 그는 "밀린 아파트 월세를 제하고 보증금을 받아 더 작은 아파트 월세로 이사를 했고, 노동청에 불려가 체불 임금 합의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책상 하나를 빌려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그는 직원 20명을 거느린 회사의 대표로 다시 일어섰다.
이 대표는 "40일간 가족과 함께한 유럽 여행이 나에게 삶의 동기와 활력을 다시 불어넣어 주는 계기가 됐다"며 "만약 그때 유럽 여행이란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더 이상한(?) 행동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는 그는 "가게가 망해갈 때 보험금을 받으려고 수차례 가게에 불을 내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며 "유럽 여행을 통해 인생의 성공은 부유한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여행을 계속하며 사는 것이라 여기게 됐고 해마다 가족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