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구에도 '역사박물관' 하나 세웠으면

입력 2016-08-26 04:55:02

1392년 7월 17일 이성계는 송도 수창궁에서 조선을 개창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천도를 천명했다. 계룡산 기슭을 도읍지로 정해 이듬해 2월에 수도 건설은 시작됐다. 그런데 그해 말 하륜의 반대로 공사를 취소하게 되었다. 계룡산은 나라의 남쪽에 치우쳤다는 게 그 이유였다.

태조 3년 2월 하륜이 무악을 주장했다. 8월에는 태조가 직접 무악에 도착했고, 이튿날은 백악산 아래를 둘러봤다. 거기서 정도전, 하륜 등 신하들과 무학대사의 의견을 듣는 등 신중을 기해 한양으로 결정했다. 서울 외곽으론 외사산이 둘러져 있다. 북한산, 덕양산, 관악산, 아차산이다. 한양을 병풍처럼 두르고, 그 안쪽으로 북악산, 타락산, 목멱산, 인왕산이 자리 잡았다. 내사산이다.

송도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태조는 음력 10월 25일 개성을 출발하여 29일 한양에 도착했다. 궁궐은 건설 중이어서 한양부 관사를 임시로 사용했다. 태조 4년(1395) 9월에 완성한 궁궐은 이미 권중화가 올렸던 새 도읍지 한양의 종묘'궁전'사직 등의 형세도에 따랐고, 종묘와 사직 체제도 완비했다. 이듬해 한양 도성은 내사산 능선으로 축성해 18.6㎞에 이른다.

1398년 8월 왕자의 난 이후 즉위한 정종은 한양이 불길하다며 다시 개성으로 환도했다. 정종이 2년 만에 왕위에서 물러나고 태종이 즉위하자 또다시 한양으로 재천도할 것을 결정했고, 창덕궁을 건설한 뒤 태종 5년(1405) 10월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한양은 조선왕조 500년을 거치면서 시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한양의 역사적 사실과 문화재를 운현궁지에 자리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보여주고 있다. 도서실도 있어서 역사문헌 앞엔 독서인이 넘치고, 석물 등 많은 유물이 전시된 야외 전시장은 공원인 듯 북적인다.

한편 달구벌은 공산과 포산이 남북에서 외안산으로 마주하고, 성불산이 내안산으로 정남에 우뚝한 가운데 낙동강과 금호강이 휘돈다. 달구벌은 신라의 삼국통일 후 신문왕 9년(689)에 신라 도읍지로 거론된 바 있었다. 그럼에도 대구는 신라부터 조선 개창 시까지 지방행정의 하급 단계인 현(縣)이었다. 태조 3년(1394)에 수성현을, 태종 14년(1414)에는 해안'하빈현을 합쳤다. 세종 원년(1419)에 군으로 승격됐고, 세조 12년(1466)에 도호부 설치로 부사가 파견됐다.

경상감영은 선조 29년(1596) 대구부에 처음으로 세웠다. 하지만 이듬해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려 안동대도호부로 옮겨졌다가 선조 34년(1601)에 다시 대구부로 옮겨왔고, 선조 40년(1607)에는 폐지됐다가 현종 10년(1669)에 다시 원상회복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구에는 달성공원 안에 대구향토역사관이 있고, 구 상업은행 건물에 대구근대역사관이 있다. 물론 국립대구박물관도 수성구에 있다. 향토역사관은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대구의 역사 흐름과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전시돼 있다. 근대역사관은 근대기 대구의 모습과 선조들의 생활상을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실 등에서 소개하고 있다. '향토'와 '근대'에 치우친 두 역사관은 출토와 소장 유물에 비해 규모도 전시 자료도 타 도시에 비교할 수 없다. 국립대구박물관은 고대문화와 불교'유교문화 전시실에서 경북이 포함돼 있고, 옷의 역사만 따로 전시 소개하고 있다.

도시마다 역사박물관 건립이 대세다. 대구에도 너른 부지에 그럴듯한 '대구역사박물관' 하나쯤 세웠으면 좋으리라. 관풍루도 옮기고…. 지역 대학의 박물관과 월곡 등 사설박물관에서도 문헌과 역사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부족하다면 복제품도 요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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