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역사를 외면하는 한국인

입력 2016-08-24 04:55:02

잔혹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던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범행의 주체를 '나치'로 한정함으로써 전체 독일인이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독일 국민의 열렬한 지지로 나치가 성장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독일인과 나치의 분리는 모순이다. 하지만 국민을 죄의식에서 구하려는 의도와 이어진 반성의 진정성은 인정할 만하다. 독일은 지도자는 물론이고 전 독일인들이 나치 범죄를 사과했다. 다시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역사박물관을 만들고, 범죄의 증거인 강제 수용소를 보존했다. 나치가 대두하는 정치적 과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그런 세력이 재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침략 전쟁을 반성하는 대신 스스로를 '피해자'로 간주함으로써 죄의식에서 벗어났다. 자신들이 먼저 도발했음에도 서양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태평양 전쟁 전범의 위패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함으로써 전범을 미화했다. 여기에 최초의 원폭 피해국이라는 사실까지 더하면서 일본인들은 스스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독일은 죄를 반성함으로써 거듭났지만, 일본은 스스로 죄를 사함으로써 거듭났던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1910년 8월 29일은 국권을 일본에 빼앗긴 날이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다. 하지만 우리들 다수는 나라를 빼앗긴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 대신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등 을사오적으로 대표되는 '매국노'(賣國奴)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외부적으로는 침략자 일본을 비난함으로써 자기 잘못을 외면했다.

한두 사람의 지사(志士)가 망해가는 나라를 구할 수 있을까? 없다. 마찬가지로 한두 사람의 매국노가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없다. 이완용과 박제순으로 대표되는 을사오적이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말이 성립하자면 '그들이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

'무릇 사람은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야 남들이 업신여기며, 집안 역시 스스로 무너진 후에야 남들이 무너뜨리고, 나라 역시 스스로 친 후에 다른 나라가 공격한다'고 옛 글은 전하고 있다.

조선이 건강했는데도 일본이 무너뜨렸는가? 조선은 스스로 무너져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나라를 빼앗긴 데는 일본의 야욕만큼이나 우리의 잘못이 크다. 한 나라가 망하는 데 총소리 한 번 나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썩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반성하지 않았다. 일본과 친일파를 비난하며 책임을 전가했을 뿐이다. 나라를 잃은 것은 19세기와 20세기 조선인들이지 현대 한국인은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그런 식이라면 현재 일본에 과거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역사적 책임은, 그 문제가 제기되는 한 모든 국민에게, 모든 세대에게 지워진다.

과거를 반성하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침팬지조차 과거나 미래 개념이 없다고 한다. 짐승들은 오직 현재에만 존재한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위험하면 피할 뿐이다.

이제 와서 지난 일을 돌이킬 수는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을 부정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난날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그에 근거해 행동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지키려는 자는 하고 싶은 일을 참고, 내키지 않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불편을 견디고 불만을 삭이고, 땀과 피를 흘릴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은 어렵고 고되다. 까닭에 많은 사람들은 쉬운 길을 택한다. 선대는 그렇게 나라를 잃었고, 후대는 타인과 외부를 원망할 뿐이다.

해방 후 71년 동안 한일병탄일(8월 29일)에 반성식을 연 적은 없다. 남들이 갖다 준 해방을 기뻐할 뿐이다. 역사를 보는 우리 태도가 이렇다. 부주의로 지갑을 잃어도 반성하는 게 사람이다. 반성하지 않으면 같은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일본도 한국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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