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미국이 발을 빼는 날

입력 2016-08-23 04:55:02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협박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해줬다. 우리가 우리의 안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중국이 결정해주겠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안보주권 행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그 가이드 라인은 자기가 판단한다는 것이다. 청 태종이 환생(還生)이라도 했나? 병자호란 뒤 조선에 허락 없이 성을 쌓거나 보수하는 것을 금지한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시대착오적 중화(中華) 패권의 강요이다.

이는 사드 논란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끌고 간다. 사드가 북한 핵과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중국의 주장대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로의 편입을 위한 예비 단계냐는 이제 부차적 문제이고, 방어용이든 공격용이든 우리가 우리의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그 어떤 선택도 자주적으로 내릴 수 있느냐가 본질적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와 만주, 산둥성에 미사일 600여 기를 배치해놓고 있다. 모두 한국군과 주한 미군기지를 겨냥한 것이다. 중국은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한 번도 통보하거나 설명하지 않았다. 중국은 우리를 공격할 무기를 가져도 되고 우리는 북한 미사일을 방어할 무기도 가지면 안 되나?

우리의 안보를 위한 자주적 결정이라면 미국 무기를 들여오든, 우리가 개발하든 상관없다. 후자가 바람직하지만, 현재 우리의 능력으로는 어렵다. 그렇다면 당장은 무기를 주겠다는 미국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성곽의 돌 하나 쌓는 것까지 허락을 받는 굴욕을 되풀이해야 한다. 사드 배치의 근본적 의미는 여기서 찾아야 한다.

문제는 이런 결정에 얼마나 국내 여론이 호응하느냐이다. 사드 배치가 한국을 보호하겠다는 미국의 자애심(慈愛心) 발로만은 아닐 것이다. 그에 따른 전략적 이익이 없거나 기대치에 못 미친다면 우리가 사드를 달라고 애걸해도 미국은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전략적 이익은 우리의 노력과 별개로 생기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전자라면 국내 친중 사대주의자들의 반대에도 미국은 사드 배치를 예정대로 밀고 나갈 것이다. 후자라면 한국 여론이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미국은 결정을 재고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재 미국의 판단은 일단 전자에 가깝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귀환 정책은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태평양으로 중국의 세력 확장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한반도는 그 전초기지로서 효용성이 크다. 하지만 미국의 방어 우선순위에서 한국은 일본에 훨씬 뒤진다. 일본 열도는 중국이 북태평양으로 진출하는 통로를 남북으로 길게 가로막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국이 미국을 등지고 중국 세력권으로 들어가도 일본이란 불침 항공모함이 있다는 얘기다.

결국 아쉬운 것은 미국이 아니라 우리다. 미국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계속해서 환기시키지 않으면 미국은 한국에서 발을 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그렇게 한 바 있다. 1947년 9월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군사적 안전보장의 관점에서 미국이 현재의 병력과 기지를 한국 내에 유지함으로써 얻을 전략적 이익은 거의 없다"고 보고했다. 트루먼은 이 보고에 따라 1948년 4월 "분단국의 어느 일방이 군사행동을 취하더라도 그것이 미국의 개전 사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딘 애치슨 국무장관은 1949년 1월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은 제외된다"며 이를 재확인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6'25가 터졌다.

노무현정부를 시작으로 박근혜정부까지 가담한 친중 편향으로 한미 동맹에 대한 미국 조야(朝野)의 회의는 커져 왔다.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한국을 빼고 호주를 집어넣자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미국은 한국 내 반대 여론을 계속 주시할 것이다. 그 수위가 임계점을 넘으면 미국은 고민할 것이다. 한국에서 발을 뺄지 말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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