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조선통신사의 직무유기와 국가안보

입력 2016-08-23 04:55:02

경북고
경북고'서울대. 전 뉴욕 부총영사. 전 태국 공사. 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

사드 배치는 北 핵·미사일 공격 방어용

절차상 문제나 반발은 힘 모아 대처를

임진왜란·6·25전쟁 반면교사 삼아서

국가 안위에 대한 방비태세 엄정해야

1591년 봄, 일본의 조선 침략 가능성을 탐지코자 파견되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난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통신사가 돌아왔다. 선조에게 아뢰길 서인(西人)인 황윤길은 "반드시 병화(必有兵禍)가 있을 것이니 방비해야 한다"고 했고, 동인(東人)인 김성일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반대 보고를 했다. 어느 한쪽은 국가의 안위를 놓고서도 당파논리 속에서 적진 상황을 본 대로 보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신반의의 분위기 속에서도 조정은 마침 동인의 수중에 있었고, 무능한 선조도 쉬운 길을 택했음은 주지의 역사다. 즉 바른말을 했던 황윤길은 파당이기주의로 조정과 민심을 어지럽힌 '죽일 놈'이 되어 버렸다.

역사가 여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지만 조선통신사가 다녀온 이듬해 임진년 4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보란 듯이 700여 척의 병선으로 20만 대군을 거병,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외치며 조선을 침략했으니, 바로 임진왜란이다. 한 치 앞도 못 내다본 조선 조정은 우왕좌왕, 국민도 버린 채 선조의 피란길을 따랐고, 아무 준비도 안 된 조선 군대는 싸우는 곳마다 패배했으며, 기세등등한 왜군은 20여 일 만에 한양을 집어삼켰다. 만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국난을 미리 방비하지 못하게 한 직무유기의 죄로 죽어 마땅한 김성일 부사의 보고가 되레 만고의 진실로 역사에 기록됐을 게 아닌가!

얼마 전 철원군에 있는 제2땅굴을 보러 갔었다. 북한이 기습남침용으로 3.5㎞에 달하는 땅굴을 남쪽으로 뚫어 시간당 2만여 명을 이동시킬 수 있는 규모의 터널이라고 했다. 지하 100여m 땅속 바윗덩이를 용의주도하게 굴착한 북한의 흉계를 목격하며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땅굴을 발견할 때의 에피소드가 더 전율적이었다. 항상 초병이 경계근무를 섰음에도 간파하지 못했었는데, 어느 날 한 사병이 지하에 퍽퍽 거리는 희미한 소리를 들었단다. 소대장에게 지하에 굴착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다고 보고하니 소대장 왈, "이 근방에는 광산도 하나 없는데 뭔 굴을 판다는 거냐? 헛소리 말고 근무나 똑바로 서라"며 꿀밤을 줬단다. 또 얼마 지나 똑같은 보고를 하며 "제가 사회에서 광부 하다 온 놈입니다"하며 분명히 굴을 뚫고 있으니 정밀탐사를 해야 한다고 빡빡 우겼고, 결국 땅굴을 발견했다. 우리의 철창봉쇄로 북한의 뒤통수 기습을 완벽히 차단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국가 안위에 대한 방비태세는 엄정하기 그지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THAAD) 배치를 두고 사공들의 논란이 도를 넘는 정치를 보며, 문득 이름 없이 사라져간 400여 년 전의 황윤길 정사가 떠오른다. 당시에도 없었을까? 거짓 보고(?)를 결코 좌시할 수 없다고 삭발까지 하며 억척스레 상소해대는 파당이나, 다시 대한해협을 건너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허망(虛妄)을 직접 캐묻겠다고 날뛰는 용맹한 정치배나, 진짜 원인에겐 찍소리도 안 하면서 조정의 결정이 판단착오니, 패착이니 하며 적진에 유리한 언사까지 동원하는 전직 권력층이나, 씨도 안 먹히는 동문서답의 방안을 해결책이랍시고 우아하게 개진하며 비판 일변도로 몰아가는 기회주의자들 말이다.

황윤길 정사의 옳은 보고는 일본 침략에 철저히 방비하자는 게 아니던가? 적의 동향을 살피러 간 척후로서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근본이리라. 국가 안보를 논하면서 근본은 망각하고 부수적인 잘잘못에 매몰돼서는 안 될 것이다. 사드 배치는 누가 뭐라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는 우리의 생존이 걸린 주권적 방비 결정인 만큼, 결정된 대로 하루라도 빨리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흔들림은 주변뿐만 아니라 동맹국까지도 주시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행과정에서 빚어지는 절차상의 문제라든가, 속내 있는 강력한 반발은 힘 모아 수습하고 대처해나가면 될 것이다. 아무리 경제가 중하다고 해도 결코 안보보다 더 중할 수는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역사나, 가까운 구한말(舊韓末)의 역사나, 얼마 전 6'25의 역사는 우리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반면교사가 되는 오늘이다. 동북아 패권 다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함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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