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이화여대, 살아있네

입력 2016-08-20 04:55:01

서울대 의대 졸업. 서울대 의대 박사(기생충학 전공)
서울대 의대 졸업. 서울대 의대 박사(기생충학 전공)

올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있자니 전기세가 무서웠다. 사람들은 갑자기 누진으로 부과되는 전기세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누진제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자 대통령님은 "조만간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매우 이례적인 반응을 보이셨다. 평소 명민하던 대통령님의 판단력이 더위 때문에 흐트러진 게 아닌가 걱정이 됐다. 그런데 이 더운 여름, 이화여대 학생들은 본관을 통째로 점거하고 20일 넘게 농성 중이다. 이 사태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것도 다 더위 때문이었다.

발단은 미래라이프대학이었다. 2015년 8월, 박근혜 대통령은 고등학교만 나온 뒤 취업을 한 사람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졸 학생들에 대한 대통령의 따뜻한 관심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교육부는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을 벌인다. 고졸 취업자들을 받는 단과대학을 만들면 해당 대학에 3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대학 측으로서는 매력을 느낄 만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어서다. 한때 천정부지로 치솟던 대학 등록금은 학생들의 반발로 인해 최근 몇 년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등록금을 올리면 학교 정원을 감축하고 교육부 지원을 중단하는 등의 제재를 받으니, 올려봤자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등록금이 주된 수입원이라는 것. 다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민하던 차에 교육부의 사업은 가뭄의 단비였고, 그건 2014년 적립금 1위에 빛나는 이화여대라고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 정책이 지나치게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게 문제였다. 단과대가 만들어지려면 무슨 과를 만들지 정하고, 커리큘럼을 짜고, 교수들도 뽑는 등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상학교 선정이 끝난 것이 올해 7월 중순인데 내년 3월부터 당장 신입생을 받으라는 교육부의 요구는 해도 너무한 처사였다.

이화여대가 만들기로 한 미래라이프대학을 보자. 여기서는 고졸 취업자에게 인문학이나 경제학 등 대학에서 배워야 할 과목들을 수강하게 하는 대신 뷰티와 다이어트, 헬스, 요가 등을 가르친다는데, 이런 것들을 배우기 위해 굳이 대학에 가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게다가 2년만 다니면 학위를 준다고 하니, 이건 학위 장사를 하겠다고 나선 게 아니겠는가? 다른 나라에서는 평생단과대학으로 학위를 받은 이들이 많다는 게 학교 측의 변명이지만, 대학 입시가 거의 전쟁에 비유될 만큼 치열한 우리나라인 만큼 이게 같은 잣대로 취급될 일은 아니다.

학생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총장은 학생들과의 대화에 응하기보다는 경찰을 불러 학생들을 진압함으로써 사태를 키웠는데, 그 바람에 미래라이프대학은 철회가 됐지만, 학생들은 총장 사퇴를 외치며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그간 이화여대는 '된장녀'라는 편견에 시달려 왔다. 화장과 명품만 좋아하며, 훈계 대상 1순위로 알려진 곳이 바로 이대 아닌가? 세간의 소문이 어떻든지 간에 이대생들은 최소한 무엇이 옳은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궁금한 것은 다른 학교다.

평생교육사업단이 선정한 대학은 모두 10개로, 철회를 통보한 이화여대 말고도 아직 많은 대학이 남아 있다. 대구대, 명지대, 부경대, 서울과기대, 인하대, 제주대, 창원대, 한밭대가 바로 그들인데, 이 대학의 학생들은 왜 아직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학교에 지킬만한 명예가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날씨가 너무 더워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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