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내가 죽으면 하나뿐인 우리 딸 어떡해"
"손톱 밑도 새까매졌네요. 항암치료 부작용이 스무 가지도 넘는다더니."
머리를 스카프로 덮어쓴 강영주(가명'50'유방암 3기) 씨는 문득 열 손가락을 구부려 손톱을 들여다보며 읊조렸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머리는 다 빠졌고 잇몸은 다 드러났다. 올해 말까지 8차례 예정된 치료는 회를 거듭할수록 힘들어졌지만 강 씨는 언제나 씩씩한 얼굴을 했다. 남들은 보호자나 간병인과 함께 와서 치료를 받지만 강 씨는 늘 혼자였다. 그래서 더 씩씩하게 웃었다.
하지만 타인의 불편한 시선은 결국 강 씨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병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 누가 나보고 '같이 와 줄 남편도, 자식도 없느냐'고 묻더라고요. 나는 혼자서도 잘 해내고 있는데." 그 말을 듣고 강 씨는 한동안 우울증에 빠졌다. 중학교 2학년 딸이 없는 사이 집에서 소리를 지르며 울기도 했다. "착한 사람이 나쁜 병 걸려 일찍 죽는다던 어릴 적 친구 얘기가 문득 떠올랐어요. 그냥 인생이 너무 억울해요."
◆'고슴도치' 모녀
강 씨의 남편은 딸이 태어난 지 2년도 안 돼 술에 취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다. 평소 술을 좋아해 가정을 돌보지 않던 남편이었다. 추운 겨울밤 남편의 사고 소식에 딸아이를 둘러업고 쫓아간 곳에서 남편은 처연히 눈을 감고 있었다. 강 씨는 남편을 보내고 일주일간 실어증에 걸렸다. 시댁 식구와는 연을 끊었다. "시댁 식구들이 딸을 보며 얘가 태어나는 바람에 남편이 죽었다고 하대요. 세상 참 무섭더라고요."
그날 이후 강 씨는 연약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살았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고아로 자란 자신과 아빠 없이 클 딸을 행여 누가 건드릴까 매일 긴장했다. 그러나 딸은 번번이 밖에서 상처를 입고 돌아왔고 그럴 때마다 딸은 강 씨 무릎에 엎어져 눈물을 펑펑 쏟았다. "우리는 남에게 해코지하지 않는데 남들은 힘없는 우리에게 왜…." 강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딸과 단둘이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강 씨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딸이 2, 3살 때 동사무소에서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려니 자활 근로를 시켰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어린이집 등에서 청소하는 일이었다. 딸을 업고 두 달 일하면서 생리가 9년이 끊길 만큼 힘들었고 겨우 수급비(한 달 55만원)를 챙길 수 있었다. 이후 강 씨는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아파트 청소, 분식집 주방일, 전단 배포를 하면서 다달이 버텼죠. 내 힘닿는 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엄마의 꿈은 '딸과 여행'
"처음에 제가 가슴이 이상하다고 그러니까 딸내미가 놀라면서 '엄마, 왜?' 그러더라고요." 올해 5월 강 씨는 몸을 씻다가 오른쪽 가슴에 손톱만큼 움푹 들어간 부위를 발견했고 6월 병원에서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하나뿐인 혈육인 딸을 앉혀 놓고 '엄마 오른쪽 가슴에 나쁜 병이 생겼다'고 전하자 딸은 미동도 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에게 '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의 양녀로 들어가라'고 얘기하자 그제야 딸은 벼락같이 화를 냈다. "딸이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는데 어떻게 헤어지느냐'며 울더군요,"
아파서 '보호자'가 필요한 강 씨는 여전히 딸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만 했다. 아픈 몸으로 어린 딸의 밥을 챙기고 빨래를 해야 하지만 요즘은 기력이 달려 집안일조차 버겁다. 강 씨는 아프면서 딸과 자주 다퉜다. 아파서 신경이 예민해진데다 병이 걸린 게 억울해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다. 가끔 크게 화가 나면 강 씨는 참지 못하고 딸에게 '엄마가 죽으면 너는 혼자야'라고 말하고 만다. "말을 하고 나서 꼭 후회해요. 딸에게 상처를 주면 결국 그게 나한테 상처를 주는 건데."
아직 딸과 둘이서 한 번도 여행을 가보지 못한 강 씨는 내년에는 다 나아서 딸과 여행을 가는 것이 꿈이다. "올여름 딸이랑 지리산 여행 가기로 약속했는데 올해는 약속을 못 지키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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