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언제까지 속아야 하나

입력 2016-08-12 05:00:02

온 나라가 사드 때문에 난리다. 정치권은 갈리고, 민심은 분열됐다. 일부는 성주를 향해 '지역 이기주의'라며 손가락질하는가 하면 폭도 운운하며 몰아세웠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도 속 시끄럽다. 자그마하고 평온하던 성주는 난데없는 사드 때문에 쑥대밭이 됐다. 일상은 사라지고 시간은 7월 13일에 멈춰버렸다.

사드 직전에는 신공항이 폭탄 역할을 제대로 했다. 영남권 신공항 때문에 대구경북과 부산과의 관계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역시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붙인 수도권 언론 및 정치인 때문에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 신공항은 백지화로 끝났고, 한과 상처만 남았다.

단언컨대 사드와 신공항 분란을 일으킨 건 정부다. 국민과 지역을 분열시키고 쓸데없는 행정력과 시간을 낭비시킨 건 정부 무능함 때문이다. 정부가 조금만 신중했어도 사드는 지금과 같은 극한 양상으로는 전개되지 않았다. 일 처리는 미숙했고, 발표 시점 등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간 보다가 기습적으로 뒤통수를 내리친 모양새다.

성주로선 세상천지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어떤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배치 지역 발표도 기습적이었다. 그래서 '이런 경우가 어딨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가 폭도, 외부 세력, 종북 등 온갖 욕을 얻어먹었다. 게다가 위로는커녕 경찰력까지 강화시켜 집회 가담자들을 찾아내 사법처리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성주는 참외 농사 잘 짓고 있다가 갑자기 날아든 사드 포탄에 초토화됐고, 하루아침에 집 안방을 내준 것도 모자라 국가 안보에 반기를 든 역적이 돼 버렸다. 정부는 성주나 경북과 어떠한 상의나 협의도 없었다. 설득이나 양해 과정조차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주지 않았다. 이게 성주 사드의 민낯이다.

영남권 신공항도 가관이다. '영남권에 신공항 필요하다' '수요는 충분하다' '이번엔 어떤 일이 있어도 입지를 선정한다' '신공항 반드시 추진한다' 등은 영남권 신공항에 대해 정부가 호언장담한 발언들이다. 무엇보다 이는 대통령 공약이다. 영남권 5개 시도는 철석같이 믿었고, 자신들의 희망 입지를 위해 1년 넘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정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난데없는 '김해공항 확장안'을 내놓고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끝내 버렸다. 지자체들은 헛심만 쓰고, 지역 간 불신과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행정력과 시간, 돈 낭비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김해공항 확장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수'였다. 정부가 이미 여러 차례 '불가' 판정을 내렸던, 이미 사형선고가 난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된 게 입지 선정 용역이고, 엄선된 밀양과 가덕도가 맞붙었던 것이다.

그런데 1년간의 용역 후 죽었던 방안이 다시 살아났다. 정부는 신공항과 관련된 모든 결정을 용역기관의 권한과 책임으로 돌렸고, 그 용역기관은 보도 자료만도 못한 자료 하나 덜렁 만들어 발표하고는 자기 나라로 가버렸다. 제대로 된 용역 결과 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은 채 허겁지겁 프랑스로 날아갔고, 신공항도 그렇게 함께 날아가 버렸다.

그런 정부가 뒤늦게 사태 수습을 하겠다고 나섰다. 성주 내 제3의 지역을 검토하고, K2와 대구공항을 통합이전하겠다고 한다. 솔직히 제대로 수습할 의지가 있는지 믿음이 안 간다. 신공항, 사드 등 일련의 국가 막중 대사들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명확하게 봐 왔기 때문이다. 또 최근 대통령의 발언과 약속에 떠밀려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론 사업을 추진하면서 과정과 결과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도 비쳐진다. 엉망진창이 된 사태를 조금이라도 바로잡으려는 노력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또 한 장의 부도수표로 끝날지 최선의 수습 노력과 결과로 새로운 관계와 시작을 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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