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생각] '삼시세끼' 감상법

입력 2016-08-11 05:20:05

요즘 한 케이블 TV의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인간이 발 딛고 살아가는 이유는 먹기 위해서다'는 명제를 입증하듯 한 끼 밥을 위한 네 남자의 활약이 펼쳐진다.

'대본도 어떤 설정도 없다'는 나영석 PD의 연출법도 우리를 TV에 붙잡아 두는 요소다. 약간의 노동과 부식거리를 교환하며 밥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때론 진지하게 그려낸다.

세끼의 공간이 되는 집 구조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잘 먹자'는 프로인데 요리를 위한 집안 구조는 최악이라는 점이다. 밥은 마당에서 짓고, 설거지는 부엌 앞 수돗가에서 하며, 요리는 대청마루에서 하는 식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세끼' 집안의 구조는 범죄(?) 수준의 동선이다. 한 끼를 위해 주부들은 마당, 수돗가, 대청, 텃밭을 끊임없이 왕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레인지에 3분만 돌리면 요리가 튀어나오고 반경 2, 3m 안에 모든 조리시스템이 갖춰진 요즘 세상에선 딴 나라의 일처럼 느껴진다.

요즘엔 '새벽밥'이라는 단어에 감흥이나 감동이 별로 없다. 입식(立式) 부엌이 드물던 20, 30년 전 우리 어머니들이 한 끼 식사를 위해 새벽부터 온 집안을 돌아다녀야 했던 과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류는 편안함에 빠져들며 노동의 가치나 수고의 소중함 같은 건 점차 퇴색됐다.

우리를 게으름에 길들이게 한 문명의 이기(利器)는 또 있다. TV 리모컨이다. 옛날의 TV는 모두 사람의 손이 닿아야 작동했다. 켤 때 온'오프 스위치를 누르고, 로터리 채널을 돌려야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었으며 콘트라스트나 밝기 같은 미세 조정도 모두 손으로 직접 해야 했다. 바람에 안테나가 흔들려 방향이 바뀌면 지붕이나 담장으로 올라가 방향을 맞추느라 애쓰는 것도 흔한 풍경이었다.

소파에 기댄 채 리모컨 하나로 수백 개의 채널을 손끝으로 불러내는 세상에 30년 전 TV 시청을 위한 수고담은 먼 나라 얘기로 들린다.

이렇게 우리가 편리에 길들여지는 동안 많은 걱정과 재앙도 같이 따라왔다. 비만과 성인병과 영양 과잉 같은 것들이다. 한 문명학자는 서구의 몰락을 예견하며 그 근거로 비만과 영양과다를 들었다. 커피를 들고 도심을 걷는 수많은 뚱보, 마트에서 허겁지겁 식품을 챙기는 비만 여성들을 보며 장차 닥쳐올 불행을 예고했던 것이다.

갈라파고스 가마우지의 일화도 떠오른다. 부두에서 어부들이 던져주는 물고기에 길들여진 가마우지들이 날개가 퇴화해 결국 비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다.

한번 편리함에 길들여진 인류가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전자레인지, 오븐이 있는 주방에서 장작을 팰 수 없듯 말이다.

듣기에 거실에 리모컨만 없애도 뱃살의 20%는 잡을 수 있고, 청소기 대신 비질과 걸레질만 해도 허리두께를 반 뼘쯤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차승원의 현란한 요리 솜씨 뒤에 숨어 있는 수고와 노동의 미덕(한 끼 밥을 위한)을 읽어냈다면 당신은 진짜 '세끼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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