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온 히라오카 前 히로시마 시장…1991년 평화선언, 식민지배 첫 사과
"원자 폭탄 피해자 중 한국인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히로시마에 투하된 미국 원자폭탄으로 인해 시가지 건물의 약 70%가 불탔고 시민 14만여 명이 숨졌다. 당시 히로시마 인근에는 5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있었고 이 중 수만 명이 피해를 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부터 한국인 피폭자 문제를 제기해온 히라오카 다카시(89) 전 히로시마 시장이 7일 오후 대구를 찾았다. 이날 오후 2시 중구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2층 상상마당에서 '고난의 역사와 평화의 길, 한국인 피폭자 문제를 생각하다'란 제목으로 강연을 준비하던 그를 만났다.
히라오카 씨는 1965년 받은 한 통의 편지를 받고 한국인 피폭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당시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국립마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던 한국인 피폭자 박모 씨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그가 겪는 고통과 함께 일본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는 내용이 담겼다. 원폭 피해자는 당연히 일본인만이라고 여겼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히라오카 씨는 한국인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강조해왔다. 그는 "서울에서 살던 중학생 시절에는 일본이 침략자라는 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패전 이후 역사 공부를 해보니 일본이 한국인의 정체성까지 부정하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어를 못 쓰도록 하고, 신사 참배를 강요하고, 이름까지 바꾸게 했다. 이러한 형태의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책임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그는 히로시마 시장 재임 중이던 1991년 '히로시마 평화선언'에서 일본의 식민지배 문제를 사과하는 언급을 처음으로 했고, 1999년에는 히로시마 평화공원 밖에 있던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공원 안으로 옮기기도 했다.
히라오카 씨는 지난 5월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했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했다. 그는 "당시 방문은 미'일 동맹 강화라는 정치적 목적이 강했다. 아베 총리는 지지율을 높이고, 오바마 대통령은 '역사 실적 만들기'를 했다. 그러한 '정치적 쇼'에 원폭 피해자들만 이용당한 것이다"고 했다.
이날 강연회에서 히라오카 씨는 한'일 양국 피폭자들의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지구 상에는 나가사키에서의 피폭자뿐만 아니라 핵실험과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해 태어난 수많은 피폭자가 있다"며 "이 공포의 시대를 끝내고 '핵 없는 세계'를 만드는 첫걸음은 한'일 양국 피폭자의 연대일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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