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햇옥수수

입력 2016-08-01 05:00:00

어릴 때 나는 옥수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초등학교 도덕시간에 북한 아이들은 쌀이 없어서 매일 옥수수밥을 먹고산다는 대목에서 '와, 좋겠다!'라고 말했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어디 가서 그런 소리 절대로 하지 말라는 꾸중을 듣기도 했었다.(커서 생각해 보니 국가보안법 상의 찬양'고무죄에 해당하는 큰 죄였던 것 같다.) 옥수수는 먹고 싶은데 우리 집에서 키우는 옥수수는 논두렁에 심어 놓은 몇 개뿐이어서 몇 번 먹어 보지도 못하고 한 해를 지나가야 했었다. 나의 그런 옥수수에 맺힌 한을 아시는 어머니께서 며칠 전 '햇옥수수'를 한 상자 보내 주셨다. 논두렁이 아닌 텃밭에 꽤 많이 키우는데다 예전에 여덟 식구가 살던 집에 이제 부모님 두 분만 계셔서 그런지 아주 넉넉하게 보내주셨다. 그날 우리 식구들은 김을 호호 불어가며 햇옥수수를 먹었는데, 그 모습은 수입산 통조림으로는 대체될 수 없는 정감이 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그런 햇옥수수의 내력에 대해 추억을 느끼겠지만, 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햇옥수수가 꽤나 골치 아픈 내력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예전에 시험 출제를 하면서 그해에 난 것을 말할 때 '햇사과, 햇곡식'은 맞지만 '햇콩, 햇쑥'은 틀린 이유를 묻는 문제를 출제했었다. '햇사과'의 경우 '해+사과'가 결합된 합성어로 보면 발음이 [해싸과]가 되기 때문에 사이시옷이 들어가야 하지만 '해+콩'의 경우는 음운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써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도한 문제였었다.('위+집'은 [위찝]으로 발음나기 때문에 '윗집'으로 쓰지만 '위+쪽'은 아무런 음운 변화가 없기 때문에 '위쪽'으로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다른 말들을 생각해 보다 보니 '해+옥수수'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경우는 사이시옷을 쓰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해옥수수'라고 해야 할텐데 왜 '햇옥수수'가 더 자연스럽지? 이런 의문이 생기자 문제를 원점에서 검토를 해 보았다.

먼저 사전을 찾아보니 '햇'이나 '해'가 접두사로 되어 있었다. 원래는 어근이었을 테지만, 접사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접사가 결합할 때는 사이시옷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예상했던 답은 잘못된 것이었다. 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어두음이 예삿소리일 때 접사 '햇'을 쓰고, 된소리나 거센소리일 때 '해'를 쓴다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정답은 '뒷말의 어두음이 거센소리나 된소리이기 때문'이 된 것이다.(이 경우에도 '햇옥수수'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해에 난 것을 뜻할 때는 '햇'이 아무래도 '해'보다는 느낌이 잘 살아난다. 생각해 보니 '해콩'보다는 '햇콩'이 더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렇다면 굳이 어렵게 접두사를 구분할 필요 없이 '햇'으로 통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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