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기 진로교사로 발령을 받고 책임과 보람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일이 있었다. 수능시험을 막 끝낸 고3들에게 같은 지역, 비슷한 환경을 가진 후배들을 위해 멘토링 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J군을 만난 것이다. 시골에서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한 나로서는 '선후배 멘토링'이 가장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프로그램이라고 믿었다. 사실 고3 재학생들이 후배 사랑이라는 의미만 가지고서 멘토링에 성실히 참여할 것이란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J군은 가장 먼저 와서 멘토링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나에게 질문하기도 하고, 본인이 진로를 선택한 이야기부터 입시를 준비하며 아쉽고 후회되었던 부분, 다양한 입시정보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하며 의욕적으로 후배들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 많은 수의 후배들이 학습코칭을 원하는 것을 보고 주변 친구들까지 데리고 올 정도였다. J군이 이처럼 열심히 후배들에게 동기부여를 한 결과, 후배들 또한 자신들의 진로를 위해 의욕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심지어 J군은 이듬해 3월 서울과학기술대에 입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주말에 학교에 나타나 주말 진로 프로그램을 도와주었으며, 여름방학이 시작되고서는 매일 진로실에 출근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J군이 나에게 '진로진학교사는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라고 질문하였다.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여 무슨 일이냐고 반문하였더니, 진로진학 분야로의 전과 또는 반수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후배 멘토링과 기타 진로 프로그램들을 직접 경험하며 본인의 진로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현재 진로보다는 이런 가치 있는 일들이 삶의 목표 겸 직업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로운 도전에 본인의 인생을 던지려 하는 J군이 걱정되었지만, J군이 진로진학 교사가 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있고 본인의 적성에도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기뻐하며 그를 격려했다. J군은 이 의지로 석 달만 공부하고도 4년 전면장학금과 책값 120만원을 매달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지역 대학 교육학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방학 때마다 찾아와 교육에 대한 질문을 하는 J군을 보면 기대 이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여 가는 모습이 느껴진다. 진로를 변경하는 것은 힘든 일이겠지만 그는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 J군은 입대 전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이라는 책을 나에게 선물했다. 이 책은 '왜 요즘 아이들이 공부와 노동으로부터 도피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J군은 휴가를 나오면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이 듣고 싶단다. 입대를 하면서도 현 교육의 문제점들을 늘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찾으려는 이 멋진 청년의 열정에 감화되어 더운 여름, 나는 돋보기를 끼고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