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에 007 제임스 본드가 있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제이슨 본이 있다. 첩보영화의 새 장을 연 '본 아이덴티티'(2002)에서 '본 슈프리머시'(2004)와 '본 얼티메이텀'(2007)까지 새로운 첩보 액션영화의 주역으로 맹활약을 펼쳤던 맷 데이먼이 9년 만에 40대의 제이슨 본으로 다시 돌아왔다.
본 시리즈는 관객의 뇌리에 깊이 박힌 인상적인 액션 장면들과 함께,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살인병기가 된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 제이슨 본이 윤리적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심리적 갈등이 잘 배합된 21세기의 대표적인 액션 시리즈다. 전작보다는 속편이 더 인정받는 드문 사례를 보여준 시리즈로, 더그 라이언이 '본 아이덴티티'를 연출했지만 어쨌거나 이 시리즈의 대표 얼굴은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을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다. 이번 '제이슨 본'을 통해 폴 그린그래스의 '본 3부작'이 완성되었고, 그의 3부작은 성공적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으로 인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 이 시리즈의 특징인데, 과감하게 주인공의 이름 제이슨 본을 제목에 그대로 쓰는 것은 특별하다. 이제 자신에 대해 자각한 달라진 본을 기대하게 한다.
2007년 제이슨 본의 실종 이후 본의 열렬한 팬들과 제작진 모두 본의 복귀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제이슨 본이 필요한 시대임을 자각했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인해 국가기관이 전 국민을 사찰하는 사이버 감시의 시대가 왔음을 알게 되었다. 스노든은 2013년 미국 국가보안국(NSA) 요원이었는데, NSA와 미국 정부의 무차별 통신 감청을 세상에 고발해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 사건은 지금도 세계 각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애국자법과 우리나라의 테러방지법이 모두 사이버 감시의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는 21세기 판 빅브라더이기 때문이다.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개개인의 정보가 감시되고 노출되는 것이 정당한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정보기관들의 사이버 전쟁 시대로 인해 세계는 새로운 시대의 전쟁 상태에 접어들었다. 영화는 사이버 전쟁 한복판에 세계가 휘말려 들어가고 있음을 시각화하기 위해, 2011년에 있었던 그리스 경제위기로 인한 대규모 시위를 배경으로 활용한다.
완전히 정지된 줄 알았던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이 다시 가동하기 시작한다. 트레드스톤이란 영화에서 CIA가 대상자들을 훈련시켜서 비밀계획하에 창설한 암살단체로,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요원들을 이용해 암살 대상을 사고사 등의 이유로 처리함으로써 암살 자체를 은폐하는 것이 목적이다. 9년 전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던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역시 CIA 전직 요원이었던 니키 파슨스(줄리아 스타일스)에 의해 자신의 과거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본이 트레드스톤의 요원이 된 과정과 본의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CIA는 또다시 그를 살해하려 시도한다.
데이비드 웹이 본명인 제이슨 본은 과거 미국 해병대 소속 대위였으나, 트레드스톤 작전에 차출되어서 CIA 소속 암살 요원으로 활동했다. 제이슨 본은 기억상실이라는 작동 오류를 일으켰지만, 여전히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10억달러의 가치를 지닌 인간병기다. 새롭게 투입된 CIA 사이버 팀장 헤더 리(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제이슨 본의 추적을 담당하는 동시에 정보기관의 불법적인 행위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듀이 국장과 심각한 의견차를 보인다. CIA로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끊임없는 감시와 공격을 당하는 제이슨 본을 은밀히 돕는 헤더 리로 인해 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등에 업고 불법적인 일에 앞장서는 국가기관에 경종을 울린다.
주연배우인 맷 데이먼은 세월의 무게 때문에 지난 작품들에 비해 활력을 보이지는 못하지만, 그리스 시위 인파 속의 추격전과 자동차 추격전의 액션은 명불허전으로 전작들처럼 탁월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빠르고 밀도 있게 교차되는 군중 속 인물들이 펼치는 액션은 박진감 넘치며 시원하게 쾌감을 선사한다.
영화는 현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무겁게 반영하여 다소 어둡고 어려운 영화로 보인다. 하지만 사용 후 용도가 다 했다고 폐기되는 인물은 현대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다루는 비정한 방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정보전에서 국가와 기업이 손을 잡고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는 권력과 자본의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또한 내부의 동지가 서로를 속이고 최고 권력의 위치에 올라서려는 출세주의 양상은 치열한 경쟁사회인 현대 사회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어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대중영화의 사회 반영성은 때론 너무 날카로워서 놀랍다. 과연 블록버스터의 자기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칭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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