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참여마당] 수필: 내 손이 약손이다

입력 2016-07-27 18:18:59

#내 손이 약손이다

내가 어릴 때 배가 아플 때마다 어머니는 "내 손이 약손이고, 니 배는 똥배다"라고 계속 노래하시면서 내 배를 주물러주셨다. 그때마다 감쪽같이 금방 나아서 뛰어다닐 수 있었다. 때로는 스르르 잠이 들어서 이튿날 잠이 깨면 거뜬히 나아 있었다.

어릴 때 배가 아픈 것은 과식 때문에 체한 경우가 많았다. 가난해서 고기를 먹을 기회가 없었는데 제사를 지내거나 잔치를 했을 때 평소 안 먹던 고기를 많이 먹으면 어김없이 설사를 하고 배가 아팠다. 설익은 과일을 많이 먹거나 날음식을 먹을 때도 그랬다. 그때마다 병원이 없는 시골마을에서 어머니는 유일한 내과의사였다.

"내 손이 약손이고 니 배는 똥배다"라고 하면서 배를 주무르시던 어머님의 손에는 분명 배를 낫게 하는 힘이 있었다. 똥배의 의미는 천하기 때문에 잘 낫는다는 의미도 있었고, 똥만 누면 나을 수 있는 하찮은 병이라는 뜻도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음식을 먹고 체하면 모두 어머니를 찾아와 배를 만져달라고 했는데, 어머니는 마치 당신의 배가 아픈 것처럼 트림을 끄럭끄럭 하시면서 30분에서 한 시간 이상 배를 주무르시곤 했다.

배를 주무르는 도중에 "물오징어를 먹고 얹혔구나" 혹은 "돼지고기를 먹고 얹혔구나" 등의 진단을 내리면 환자는 "예, 이틀 전에 오징어를 먹었습니다" 등의 대답을 하곤 했다.

어머니가 배를 다 주무르고 나서는 환자에게 엎드려 누우라고 하고 등을 발로 밟으면 몸에서 뚜닥뚜닥 소리가 났다. 그리고 높이뛰기를 몇 번 하라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 환자는 시원하다면서 걸음도 가볍게 우리 집을 나가곤 했다.

이제 어머니는 84세가 된다. 지난해 섣달 그믐날 어머니의 둘째 손녀가 시댁에서 상을 당하였는데, 어쩌다 돼지고기를 먹고 얹혔단다.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남편의 등에 업혀서 어머니를 찾아왔다. 남편도 Y대 병원에 다니는 의사이다. 이 경우 병원에서도 신통히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그녀의 남편은 급해서 밤 10시가 되어 아내의 할머니인 나의 어머니를 찾아왔던 것이다. 할머니가 한 시간 정도 배를 주무르니 통증이 멈춰 안정을 찾고 집에 돌아갔는데, 이튿날 새벽 거뜬히 나아서 세배를 하러 왔다. 그러고는 말했다. "할머니 오래 사셔야 해요. 할머니가 아니면 아무도 내 아픈 배를 치료해 줄 수 없으니까요."

오늘날 누구라도 부모나 남편이 팔다리가 피곤하다고 한 시간이나 주물러 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우리 어머니도 여러 환자의 배를 한 시간 이상 주무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한 번도 환자로부터 돈을 받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늘 "대가를 받지 않아야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지금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치과의사가 된 것도 다 어머니의 그때 공덕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혁환(칠곡군 왜관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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