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만에 빚 털고…새 출발 하려는데 심장병
"울 어무이한테도 딸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머니 황금자(가명'75) 씨의 병간호를 하는 아들 이석현(가명'41) 씨는 '아들'이라서 어머니에게 못 해주는 게 많다. 40여 년 전 왼쪽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 평생 다리를 저는 어머니는 올해 7월 초 심장판막 수술을 받고는 거동이 더 불편해졌고 혼자 화장실 가는 것도, 목욕을 하는 것도 버거워졌다. 그러나 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한사코 마다한다. 경제적으로 부담된다는 이유로 간병인도 거절했다. 그러다 최근 어머니는 아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새 혼자 화장실을 가려다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내가 니한테 이런 꼴을 다 보인다"며 가슴을 쳤고 아들은 어머니를 처음으로 씻겨 드리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바빠서 나빴던 엄마
황 씨는 젊어서 사는 게 바빴다. 그래서 아들에게 나빴다. 37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과일장사를 하며 외아들을 키운 황 씨는 새벽 5시면 가게로 나갔고 밤 11시가 넘어야 돌아왔다. 아들은 어린 시절 홀로 잠들었던 밤을 기억했다. 그리고 바쁜 황 씨가 찾아오지 않았던 수 번의 운동회와 단 세 번뿐인 졸업식을 기억했다. "졸업식 한 번 못 가본 애미 마음이 어떻겠어. 사느라 바빴다고 말할 염치도 없어."
바빠서 나빴던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연이은 악몽'으로 점철돼 있다. 결혼 초 꿈을 안고 남편과 함께 시작한 과일장사는 쉽지 않았다. 매일 과일이 잔뜩 실린 무거운 리어카를 맨몸으로 나르다가 한날은 넘어지는 바람에 왼쪽 고관절에 말썽이 생겼지만 아픈 몸을 내버려두기 일쑤였다. "한참 뒤에 너무 아파 병원을 찾아갔는데 고관절 쪽에 주사기를 꽂으니 거짓말이 아니라 고름이 한 바가지가 쏟아지대. 결국 수술을 받았는데 다리가 짧아져서 30대부터 이래 다리를 절어."
◆사람 잡아먹는 빚
몸이 성치 않은 황 씨에게 또 한 번 악몽이 찾아왔다. 남편의 죽음이었다. 내다 팔 과일을 사러 자전거를 타고 나갔던 남편은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고관절 수술에 이은 남편의 죽음으로 황 씨의 경제사정은 휘청거렸고 어떻게든 '입 두 개'를 먹여 살려야 했다. 네 살배기 아들을 짊어지고 과일 상을 떠안은 황 씨는 장사밑천이 부족해 농협공판장에 빚을 지고 결국 사채에도 손을 댔다.
빚을 갚다가 미처 갚지 못한 사채 원금 1천여만원은 매달 20~30만원의 이자가 붙어 이자를 갚아나가는 것도 벅찼고 고관절에 병이 재발해 황 씨가 일을 놓자 스무 살을 갓 넘긴 아들에게로 빚이 넘어갔다. 아들은 그 후로 이십여 년 빚으로부터 도망쳐다녔다. 직장을 구해 월급을 받으면 압류가 됐고 이자를 갚아도 원금은 줄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반복되자 아들은 이자 갚기를 포기했고, 사채업자는 모자에게 소송을 걸어 9천만원을 상환하기를 요구해왔다. "가난이 사람을 잡아먹는 게 아니라 빚이 사람을 잡아먹어."
◆아들 발목 잡는 병
황 씨와 아들이 사채의 굴레에서 벗어난 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다. 빚을 털어버리고 2014년 말 아들은 40대를 앞두고 겨우 번듯한 직장을 가지게 됐다. 황 씨가 움직일 때마다 숨이 가쁘다 느낀 것은 그 후 일 년 뒤. "아들이 겨우 빚더미에서 탈출해서 새 출발 했는데 괜한 걱정 시키기 싫었어." 황 씨는 한동안 동네병원에서 심장 약만 처방해 먹고 아들에게는 병증을 숨겼다. 그러나 약이 도저히 듣지 않고 가슴 통증까지 느껴져 최근 대구 한 대학병원을 찾았고 '심낭에 물이 차 심장을 압박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검사를 하고 심낭에 물을 빼는 등 치료를 하는 데에만 200만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물 차는 증상의 재발을 막으려면 고장 난 판막을 교체하는 수술이 필요한데 비용만 1천만원이 넘는 대수술이었다. 황 씨는 아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결국 내가 병을 키웠어. 방세가 없어 남의집살이하는 형편에 또 이렇게 아들 발목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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