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대담] 정동채 전 문화부장관

입력 2016-07-24 22:30:02

"가톨릭 신자지만 부처의 말씀 와닿아…종교 알수록 合一 느낀다"

정동채 전 문화부장관 사진=이성근 객원기자
정동채 전 문화부장관 사진=이성근 객원기자

인상과 말투에서 인자한 구도자(求道者)의 모습을 본다.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고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했던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정동채(65) 전 장관을 만났다. 종교에 심취하며 성찰적 삶을 실천하는 그의 인생행로를 듣고 싶었다. 정 전 장관은 독실한 가톨릭신자이면서 절을 좋아하고 스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왔다. 그리스도교, 불교 성지순례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살펴보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슬람과 힌두교에도 남다른 관심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정동채 전 장관을 만나 '나를 치열하게 알면서 올바르게 사는 법'을 물었다.

김병준: 광주와 서울, 주로 어느 쪽에 계시나?

정동채: 광주에서 지내면서 지역사회에 보탬이 될 일이 있으면 거들곤 한다.

김병준: 주로 어떤 일들인가?

정동채: 이를테면, 지난달 아셈(ASEM'아시아-유럽 정상회의) 문화장관회의가 열렸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범시민위원회가 조직되었는데, 회장을 맡아 일했다. 얼마 전까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지원포럼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역 트러스트 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김병준: 지역 트러스트 운동?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지역판 같은 건가?

정동채: 그렇다. 광주 양림동 일대의 고택과 교회 등을 중심으로 지역의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가꾸고 관리하는 시민활동이다. 대구에도 계산동을 중심으로 계산성당과 청라언덕 등의 문화유산들이 있지 않나. 둘러봤는데 정말 잘 되어 있었다. 광주도 좀 늦었지만 이런 일을 해 보고자 한다.

김병준: 정치를 그만두고도 지역사회에 남아 헌신하는 게 보기가 좋다.

정동채: 광주를 기반으로 정치를 했다. 또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 광주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조성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래저래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있다.

김병준: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오늘 모신 것은 사실 정치인과 장관 경력의 종교 순례자 또는 신앙인으로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이다. 사실 2년 전 쓰신 신앙서적 를 읽고 꼭 한번 뵙고 싶었다.

정동채: 글쎄, 무슨 이야기를 드릴 수 있을지 부담이 된다.

김병준: 우선, 가톨릭 신앙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정동채: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귀의했다. 한때는 신부(神父)가 되기로 마음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제가 딸 여섯에 외아들이어서 반대가 심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결혼이 허락되는 성공회 신부가 될까 했다. 그래서 성공회의 박요한 신부를 찾아뵌 적도 있다.

김병준: 언제 때 이야기인가?

정동채: 군대 생활을 할 때였다. 휴가를 나와서 그렇게 찾아갔다. 대학 2학년 휴학 중이었는데 제대 후에는 미가엘신학원, 즉 지금의 성공회대학교로 간다는 생각을 했다.

김병준: 하지만 결국 신부가 아닌 기자가 되었다. 또 정치인이 되었고.

정동채: 그렇게 되었다. 신학보다 예쁜 여학생들 쪽으로 마음이 더 팔려버려서….(웃음) 대신 합동통신(1980년 연합통신과 통합) 기자가 되었다. 그러나 몇 년 못 가 해직되었고, 해직 후 미국에 가 있다가 1982년 미국으로 망명 온 김대중 선생을 만나 인연을 맺었다. 인권문제연구소를 만들면서였다.

김병준: 그 뒤 다시 기자로 복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동채: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하면서다. 국방부와 여'야당 출입도 하고 여론매체 부장에다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그러다 1993년 김대중 선생이 아태평화재단을 만들면서 비서실장을 맡게 되었다. 이어 국민회의를 만들고 그 당의 총재가 되면서 그대로 당 총재 비서실장이 되었다. 그리고 1996년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뜻하지 않게 정치를 하게 된 것이다.

김병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도 하셨다.

정동채: 그게 인연이 되어 장관도 했다. 어찌 보면 이삿짐 따라다니는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닌 셈이다. 그러는 과정에 영광도 있고 좌절도 있었다.

김병준: 정치를 하는 동안에도 종교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정동채: 세상 곳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종교를 아는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실패한 전생(前生)'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이생에서도 실패하고 있지만.(웃음)

김병준: 실패한 전생?

정동채: 지옥이 뭔가? 땅 지(地) 자에 옥(獄), 땅의 감옥이다. 이 세상이 지옥이다. 영혼을 잘 닦아서 부다(budda'佛)가 되면 다시 몸 받아 이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열반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으니 다시 학습하기 위해 이 땅에 나와 살고 있다. 물론 훌륭한 보살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이 땅에 다시 온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김병준: 불교 이야기 아니냐?

정동채: 엘리자베스 쿠블러-로스(Elisabeth Kubler-Ross)의 책 (死後生'On the Life after Death)을 한 번쯤 읽어도 좋다. 임상실험과 최면을 통해 전생을 살피는 정신의학자이다. 물론 불교에서도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고, 욕지래생사(欲知來生事)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라 했다. 이생에서 받는 것을 보면 전생을 알 수 있고, 이생에서 하는 일을 보면 내생이 어떨지 안다는 뜻이다.

김병준: 가톨릭 신자이신데, 가톨릭 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 것 같다.

정동채: 6년 전 입적(入寂)하신 법정 스님이 농(弄)으로 하신 표현을 빌리자면 '천불종' 신자다. 가톨릭 신자이면서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를 믿으면서 천주교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외국 승려 현각 스님이 그렇고, 프랑스 철학자 알렉산드르 졸리앙(Alexandre Jollien), 생물학자로 티베트 승려가 된 마티유 리카르(Matthieu Ricard) 등이 그렇다.

김병준: 교리가 서로 부딪치지 않나?

정동채: 공부를 할수록 오히려 궁극적인 합일을 느낀다.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 역사성을 지닌 종교가 다 그렇다. 모두 사랑과 자비, 그리고 지혜를 이야기한다. 이슬람도 마찬가지. 극단적인 무장 세력을 제외하고는 이 지점에서 다 만나게 된다.

김병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로 인한 갈등이 적지 않다.

정동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개종을 요구하지 말라고. 달라이라마 또한 그렇게 말씀하셨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길은 여러 개가 되겠지만 정상은 하나다. 다른 종교를 못마땅해야 할 이유가 없다.

김병준: 내가 다니는 절에서는 초파일 때 스님이 를 부른다. 그렇다고 부처님께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기독교 신앙이 더 위대해서 그런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동채: 대구의 정홍규 신부께서는 매일 108배를 한다고 한다. 신도들이 뭐라 하니까 108배는 안 하시겠다고, 대신 109배를 하시겠다고….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이다. 이런 자세와 노력들이 오히려 우리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내 삶을 더욱 맑게 한다고 생각한다.

김병준: 를 읽으면서 종교 간의 이질적인 면보다는 동질적인 면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책의 마지막 장, 부분은 감명 깊었다. 여러 종교의 동질성을 발견하고 정말 기쁜 마음에 쓰신 것 같았다.

정동채: 은 그리스도교의 정경(正經)은 아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좋은 의미의 충격을 받았다.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색 안에 공이 있고 공 안에 색이 있다. 유(有)가 있으니 무(無)가 있고 손이 있으니 손바닥이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처의 가르침이 궁극적으로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병준: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종교 문화 유산이나 유적들을 찾아 순례를 계속하고 계신 것 같다.

정동채: 그런 편이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김병준: 순례를 하면 어떤 마음이 되는지 궁금하다.

정동채: 나를 대면한다고 할까. 이 세상에 나와 어떤 폐를 끼치고, 또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를 생각한다. 죽을 때 후회가 없어야 할 텐데…어떤 생각에 끌려다니며 살았는지, 또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김병준: 그렇게 자기를 돌아보기보다는 복을 빌기 위해 교회나 절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정동채: 복이란 게, 또 복을 빈다는 게 허무하다. 내 경우만 해도 5'18 나흘 전 결혼을 했다. 큰 복을 받은 셈이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언론검열폐지운동을 하다가 남영동(중앙정보부 분실)에 끌려가 사직서를 쓰고 풀려났다. 고문기술자에게 '초벌구이'까지 당했다.(웃음) 영원히 가는 복이 없다. 오히려 내 영혼을 잘 닦는 것이 중요하다.

김병준: 어떻게 닦나?

정동채: 부처나 그리스도와 같은 분들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 돕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또 봉사하고.

김병준: 사실 그게 바로 기도 아니겠나?

정동채: 마태복음 25장 31절에 어떤 사람이 천당 가는지가 나온다. 새벽기도와 부흥회 많이 가고, 고해성사 잘 하고 방언할 줄 아는 사람이 천당 가는 것 아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 돕고, 고초당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 천당에 간다. 부처님 말씀도 똑같다. 육바라밀, 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여섯 가지 수행을 해야 열반할 수 있다는 것 아니냐. 굳이 말하자면 복은 자신을 닦고 베풀면서 스스로 짓는 것이지 빌어서 받는 게 아니다.

김병준: 쓰신 책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세례자 요한에게 회개를 어떻게 하느냐 물으니까 세례자 요한의 말씀이 "속옷 두 벌을 가졌으면 그 한 벌을 없는 자에게 주라"고….

정동채: 이런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제대로 된 기도를 잘 하지 않는다. 종교방송이나 종교기관들도 이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팔공산 가서, 또 아니면 교회에 와서 복을 달라고 애원한다.

김병준: 우리의 신앙이 서낭당의 기복신앙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동채: 매주 교황의 말씀을 듣는다. 줄기차게 자비를 말씀하신다. 이웃에 대한 사랑, 난민에 대한 관심,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이야기하신다.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종교지도자에 대한 경고도 하신다. 모든 신앙인이 귀를 기울여야 할 말씀이다.

김병준: 정치가 험하다. 이렇게 성찰적 지성을 가진 분이 어떻게 적응할 수 있었나?

정동채: 주로 비서실장 등 중요한 기획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는 일을 많이 했다. 자기 홍보를 해야 하는 정치인들과는 역할이 좀 달랐다.

김병준: 그래도 정치는 정치다.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한 적 없나?

정동채: 고달픈 적도 많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자생활을 하면서 익힌 성실성이 있었던 것 같다. 또 정치부 기자 출신이라 정무감각도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김병준: 2002년 대선 때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참 잘하신다고 생각했다.

정동채: 고생 많이 했다. 말로 사고를 치시는 분이니까.(웃음) 일례로 영남대학에 강연을 갔는데, 학생 한 명이 미국 갔다 왔나 물었다. 그러자 "안 갔습니다. 와요? 안 가면 반미입니까?" 혼자서 자문자답을 하는데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 뒤에 다시 "반미면 안 됩니까?" 야단이 났다. 당에서도 후보교체론이 나오고.(다 같이 웃음)

김병준: 기억난다. 그때 정말 고생 많으셨다.

정동채: 영 못나지 않았으니 두 분 대통령께서 발탁해 주신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웃음)

김병준: 다시 정치할 생각은 없나?

정동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라고 매일 기도하면서 잠든다. 정치에 끌려다니기에는 다음 생에 대한 생각이 너무 무섭다. 제대로 못 살았으니 다시 몸을 받아 세상에 올 것 아닌가? 그 생에서는 어떤 학습을 해야 할까? 또 그것을 위해 이생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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