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버금가던 남명의 기품 수백 년째 역력
'물은 경호강이요, 산은 지리산이다'의 경남 산청은 지리산 정상 천왕봉을 안고 있어 깊은 계곡과 맑은 물이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이다. 이번 답사여행은 산천재와 덕천서원, 남사마을, 구형왕릉으로 떠나본다.
◆산천재(山川齋)'덕천서원(德川書院)
첫 번째 답사지 산천재는 단성면에서 20번 국도를 타고 중산리 방면으로 약 20분 정도 달리면 지리산 천왕봉이 아스라이 보이는 덕산마을 입구 왼쪽에 있다. 이곳에서는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 선생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산천재, 덕천서원, 남명묘소, 세심정, 남명기념관이 있다.
산천재는 남명 선생이 경의(敬義)사상을 강학하던 곳으로 지리산 깊은 계곡 덕천천변에 자리하고 있다. 남명 선생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로 퇴계 이황에 버금가는 학자. 벼슬을 일절 사양하고 지리산에 은거하여 학문에 집념하였다.
이웃한 합천군 삼가면 태생이며, 정구'곽재우'정인홍 등 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그 명성이 자자했다. 61세 때인 명종 16년(1562)에 이 서재를 짓고 72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후학을 가르치고 경륜을 펼쳤다. 새로이 단장했으나 소박하고 꾸밈이 없어 남명의 참모습을 보는 듯하다.
산천재 북쪽을 10분 정도 올라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소박하지만, 지리산 자락이 켜켜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그의 묘소가 있다.
산천재에서 죽음을 맞은 날에는 지리산에 큰 나무가 말라 죽고, 폭설이 내리고 뒷산이 무너졌다고 한다. 아마 지리산도 그의 죽음을 슬퍼했었나 보다.
산천재에서 지리산 천왕봉 방향으로 5분 정도 더 가면 도로변에 덕천서원이 있다. 남명이 심었다고 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입구에서 수문장처럼 손님을 반겨 준다. 이 서원은 선조 9년(1576) 남명 타계 4년 뒤에 선생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세웠다. 사당인 숭덕사(崇德祠)와 강당, 경의당이 있다. 다른 서원에 비해 크지 않지만 전학후묘(前學後廟)로 서원 배치의 기본에 충실하고 청렴하고 단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물 맑은 덕천강 가에는 마음을 씻고자 하는 주역의 '성인 세심'에서 유래한 세심정(洗心亭)이라는 소박한 정자가 어쩐지 외로워 보인다.
◆남사마을
남사마을은 산천재로 가기 전 우측 커브길 얼핏 스쳐가기 쉬운 곳에 있다. 니구산 아래 반달 모양으로 실개천이 휘감아 도는 곳에 전통 기와집 4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통민속보존마을이다. 예담촌이라고도 불리우며, 북쪽 개천을 경계로 상사마을과 접해 있다. 사월(沙月) 또는 남사(南沙)라고도 부른다.
옛날에 남사마을에는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 등 여러 성씨가 수백년 동안 살았고, 많은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한 유서깊고 고풍스러운 마을이다. 마을 생김새가 반달모양으로 생겼으니 반달을 메우면 좋지 않다는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마을 가운데 집을 짓지 않고 농지로 남겨 놓았다고 한다. 꼭 들러봐야 할 곳은 가장 오래된 18세기에 건축된 성주 이씨 종가이다. 이 집에는 70여 년 전에 지은 사랑채 사양정사(泗陽精舍)가 있는데, 단일 건물로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크다.
또한 하영국 씨 집에는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1376~1453)이 아홉 살 때 심었다는 높이 13m, 둘레 1.8m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도 볼 수 있다.
남사마을에는 각각의 고가들이 나름대로 특색이 있지만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흙돌담길이 정겨움과 고향의 그리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마을에 꼭꼭 숨겨진 보물 하나. X자형의 회화나무 두 그루 사이에 있는 부부나무를 찾아 나뭇가지 사이에 숨겨져 있는 사랑 마크(하트 모양)를 찾아서 사랑을 확인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 마을에는 한옥고택체험(강병해 010-2315-6502)과 한방족욕체험 및 전통문화체험(070-8199-7107)도 가능하다.
◆구형왕릉
구형왕릉은 대전통영고속도로 생초나들목에서 금서면 회계리 방면으로 호젓한 들길을 약 20여 분 달리면 큰 기와집 건물인 덕양전이 나오고 덕양전 뒷길 900m 지점에 있다.
첫눈에 보아도 우리나라 왕릉 중 모양이 특이하다. 또한 수수께끼 무덤으로 전하는 구형왕릉은 왕산 아래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무덤은 기존의 봉토 무덤과는 다른 돌무덤의 형태로 얼핏 피라미드와 비슷하지만 경사진 산 중턱에 계단식으로 축조된 점이 다르다. 모두 7개 층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높이는 7.15m이며, 꼭대기에는 봉분 같은 타원형 반구로 되어 있다. 앞 넷째 단의 가운데는 감실 모양의 공간도 있다. 앞 맨 중앙에 가락국 양왕릉(駕洛國 讓王陵, 가락국은 가야, 양왕은 구형왕)이라 새겨져 있다.
구형왕은 가야 마지막 10대 임금이며 구해(仇亥) 또는 양왕(讓王)이라 하는데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 521년 가야의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재위했다. 전해 내려오기로는 약 200년 전에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고 내려오다가 왕산사에서 비를 피하던 중 왕산사 법당 들보 위에 내력을 알 수 없는 큰 목궤가 있어 사람들이 내려다보았더니, 그 속에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 옷, 활, 칼 등 유물과 명승 탄영(坦渶)의 왕산사기(王山寺記)가 나와서 이를 가지고 왕릉을 다시 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 유물들을 보존하기 위해 조선 정조 17년에 덕양전을 짓고, 이후 김해 김씨 후손들이 봄, 가을에 추모제를 지낸다고 한다.
※ Tip
▷가는 길:대구→광주대구고속도→함양에서→대전통영고속도→단성IC 하차→20번 국도를 타고 중산리 방면으로 약 15㎞ 산천재.(소요시간 약 2시간 30분 정도)
▷식사는 단성면 소재지나 산청군청 소재지에서 가능하다.
▷여름철이면 피서객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경호강래프팅(055-970-6411~3)도 즐길 수 있다.
▷덕천서원, 산천재, 남사마을, 구형왕릉은 입장료가 없으며 주차공간도 충분하다.
▷주위에 가볼 만한 곳:성철 스님의 겁외사. 문익점 목면시배유지(木棉始培遺址), 황매산영화주제공원, 단속사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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