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실밥

입력 2016-07-21 17:47:57

하루가 30시간이면 모든 일로부터 여유로워질 텐데. 지구의 자전 속도인 24시간에 맞춰 살다 보니 참으로 가혹하게 심신을 혹사시킨다. 휴일에 집 안에서 뛰어다니며 일하다 보면 내가 캥거루의 후예가 아닐까 전생을 의심하기도 하는데 그런 와중에 사건이 터졌다. 아이의 장롱에 옷을 넣는다고 후다닥 문을 여는 순간 손잡이가 뛰쳐나와 눈자위를 쳤다. 너무 아파 만지던 손을 떼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순식간에 피가 흘러 손가락이 붉게 물들었다. 지혈 후 집 근처 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휴일이라 병원에는 봉합할 수 있는 분이 정형외과 의사밖에 없었고 봉합 후 흉터가 남을 것이라 했다. 짧은 순간 우울해졌다.

어렸을 적 이모할머니댁에 갔다 다친 흉터 때문에 거울을 볼 때마다 거슬렸는데 흉터 하나 더 보탠 얼굴을 보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니. 할 수 없이 대학병원으로 차를 몰고 갔다. "이 나이에 흉터쯤이야 어때. 예쁘지도 않은 얼굴인데 말이야 하고 초월할 수도 있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안 예쁜 얼굴에 흉터까지 있어야 하다니." 이런 생각에 이르자 발걸음이 바빠졌다. 아침 이른 시각 집에서 나왔는데 한나절이 지나도록 의사 얼굴은커녕 내 차례에 대한 어떤 안내도 듣지 못했다. 기다리라고 하기만 하니 대기실에서 의지와 관계없이 노래자랑을 보고 앉아 있었다.

오후 2시가 지나자 봉합하러 온 성형외과 의사는 눈썹의 대여섯 군데에 마취 주사를 놓았다. 피부의 감각이 무뎌지자 눈썹을 꿰매며 모공이 손상되었을 경우 그 자리에 눈썹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눈썹을 저며 들어가는 실과 바늘의 이물감을 힘들게 느끼다 봉합이 끝났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 또 기다렸다.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낯설지만 서로 공감하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아주머니는 점심식사 때 참치를 먹다가 참치 캔 손잡이가 떨어져 들어간 것을 모르고 함께 삼켜서 왔고, 아가씨는 목에 생선 가시가 걸려 아프다고 호소했다. 말을 하고 있는 사이 눈앞에는 다급해 보이는 환자들이 더러는 구급차에 실려 오고, 더러는 커튼 뒤에서 고통으로 일그러진 신음을 쏟았다. 앉아 있는 동안 갖은 병원균 속에서 나의 흰피톨(백혈구)은 치열한 투쟁을 하다 마침내 지쳐가는 중이었다.

두어 시간 기다린 끝에 항생제 주사를 맞았다. 어쩌다 한 번 병원에 오면 간호사들은 다른 사람과 달리 내 혈관을 찾기가 힘들다고 주사기를 수차례 찔러댄다. 하루가 지나면 주사로 인해 손등과 팔에 피멍이 들 것이다.

밖은 어느새 어둑해졌다. 눈썹을 봉합한 실밥에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우산 속에서 뒤꿈치를 들었다. 촘촘히 꿰맨 실밥을 앞으로 믿어볼 수밖에 없다. 틈새가 갈라진 살과 살이 딴판으로 갈라서지 않고 잘 붙어주기를 바란다. 궁색하지만 그래도 피부에 땀땀이 넣은 실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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