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현실 동화-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입력 2016-07-19 19:00:48

오서은.
오서은.

그녀는 아이처럼 설레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도착한 곳이었다. 그의 빠른 발걸음에 이끌려 들어가자 입구가 나타났다. 컴퓨터로 조잡하게 만들어진 카니발 음악도 가짜로 지어진 궁전들도 모두 그 순간만큼은 진짜 같았다. 그녀는 수줍게 손목에 띠를 둘렀다. "재미있게 놀자." 그의 말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메마른 직원의 인사를 지나치자 꽃길이 펼쳐졌다. 메인 로드로 이어지는 길은 잘 심긴 형형색색의 꽃들로 물들어 있었다. 서둘러 뛰어갔다가 돌아와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녀의 아이 같은 모습을 그는 연신 땀을 닦으며 바라보았다. 한참을 걸어 광장에 도착하자 온갖 놀이기구들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기 있는 기구들 앞에는 한낮의 애매한 시간임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프라이팬처럼 이글거리는 바닥을 식히느라 뿌려놓은 물줄기 사이로 무지개가 빛나고 분수 주변에는 땀을 식히는 연인과 부모들이 앉아 약간 넋이 나간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까이 있는 기구 앞에 줄을 선 채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들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어설프기 짝이 없는 안전벨트를 머리 위에 얹자 열차는 두 사람을 하늘 위로 끌어올렸다가 땅으로 내리꽂았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긴장 따위는 다 잊혔다. 눈을 질끈 감으며 온몸으로 전해지는 중력의 무게를 쾌락으로 전환하는 비현실적인 순간. 단 몇 초뿐인 그 순간을 경험하고 내려오자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녀는 굳어 있던 그의 얼굴이 차츰 여러 개의 기구들을 타며 조금씩 풀려가는 걸 바라보았다. 얼마 후 그녀가 해맑게 그의 손을 슬며시 잡으며 말했다. "이제 뭐 타지?"

갑자기, 그가 움츠러들었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움찔하자 그는 어색한 얼굴로 "뭐 좀 먹고" 하며 손을 쓰윽 빼냈다. 그녀는 대답 없이 츄로스 가게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머릿속은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 찼다. 갑자기 그가 데리고 온 이상한 나라에 혼자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는 그녀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내가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손잡는 거 싫어해. 덥기도 하고…." 어색하게 갖다 붙인 덥다는 변명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목 뒤가 뜨끈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그가 바닥에 선 채로, 그녀가 청룡열차를 탄 사람처럼 끌어올려졌다가 땅으로 내동댕이쳐질 때까지 바라만 보고 있는 듯했다. 그가 뒤따라와 부드럽게 말했다. "섭섭해하지 마."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도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이 기구와 저 기구를 옮겨 다녔다. 해가 어둑해져 빠져나왔을 때쯤엔 그녀의 얼굴은 꿈에서 깨어난 듯 창백했다. 그를 어떻게 하면 다시 원더랜드로 데려갈 수 있을까. 그녀는 한동안 이 회전목마에서 내려오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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