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균형 외교라는 미망<迷妄>

입력 2016-07-18 20:48:04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은 미국에 한국이 중국과는 가까워지고 미국과는 거리를 두려는 시도로 읽혔다. '반미면 어떠냐' 등 그의 '자주'(自主) 행보를 감안하면 그럴 만도 했다. 미국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불쾌해하는 것은 분명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2005년 4월 외교부 당국자가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관리들에게 '균형자론'의 진의를 설명했다.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중진국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미국 관리들은 "오해가 많이 풀렸다"면서도 '뼈 있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폴란드가 한 실수를 기억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폴란드의 고민은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느냐였다. 그래서 취한 것이 '균형자' 외교였다. 중'동유럽으로의 소련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독일과 손잡고, 독일의 폴란드 공격을 막기 위해 소련과 손잡는다는 것이다. 1932년에 소련과, 1934년에 독일과 불가침조약 체결에 성공하면서 폴란드의 계산은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독일과 소련은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다.

예정된 실패였다. 폴란드는 독'소와의 불가침조약에 고무돼 자신은 약소국이 아니며 등거리외교로 두 강대국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우선 군사력이 약했다. 독일군의 전격전에 폴란드군은 일주일 만에 괴멸됐다. 등거리외교에 실행력을 부여할 강대국의 후견도 없었다.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있었지만, 폴란드는 독자적 외교를 펼 수 있음을 프랑스에 과시했고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폴란드를 지켜줄 의지가 없었다.

이런 사실(史實)은 노골화되는 중국의 패권주의와 미국의 아시아 귀환 정책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행보를 취해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균형 외교는 허구라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균형자론에 이런 비판이 쏟아지자 그의 참모들은 '세력의 균형자'가 아니라 '인식과 가치의 균형자' 역할을 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방력이 아니라 경제력과 문화 수준 그리고 주변국을 침략하지 않은 평화 애호국이란 사실 등 '연성국력'(soft power)으로 그런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상상력의 비약이다. 역사상 그런 균형자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박근혜정부의 대중'대미 외교도 균형자론의 연장선에 있었다. 2015년 중국 전승 70주년에 서방 지도자들이 불참한 가운데 박 대통령이 천안문 성루에 올라 중국군의 무력시위에 손을 흔들어준 것은 그 구체적 표현이었다. 그 배경에는 그렇게 하면 중국이 북한의 불장난을 막아줄 것이란 가정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올해 4차 핵실험을 했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중국은 말리는 척만 했다.

중국은 북한 경제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다. 북한으로 가는 송유관을 잠시만 잠가도 북한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은 그럴 뜻이 없음을 일관되게 보여줬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은 이런 중국의 실체에 대한 고통스러운 깨달음의 결과물이다. 더 이상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동북아의 균형자가 되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럴 힘이 없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균형'을 시도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이쪽에도 붙고 저쪽에도 붙는 기회주의자'란 경멸이기 십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폴란드의 행보가 그 대답의 실마리가 될 듯하다.

폴란드는 1999년 체코, 헝가리와 함께 옛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으로는 맨 처음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고 2004년에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됐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2016년에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도입했다. 힘이 약한 지역세력은 가치를 공유하는 강력한 국가와의 동맹만이 살길이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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