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눈치에 냉정한 평가 사라진 '백서'

입력 2016-07-17 19:56:25

새누리 혁신비대위 총선 참패 분석 '국민백서' 발표

지난 4'13 총선에서 '소'(지지층)를 잃고도 외양간조차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총선 결과를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기회마저 놓쳤다.

냉철한 패인 분석과 위기 극복 및 재집권을 위한 혁신 방안으로 가득 채워져야 할 '총선 평가백서'가 당내 신주류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방패막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17일 총선 참패의 원인을 분석한 '국민백서'를 공개했다.

하지만 백서는 총선 참패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전문가, 일반인, 출입기자, 당 사무처 직원, 총선 경선 후보 등의 의견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

총선 참패 원인으로 ▷계파 갈등에 따른 공천 파동 ▷상향식 여론조사 공천 ▷수직적 당청 관계 ▷대국민 소통 부재와 오만 ▷정책 부재 등을 꼽았지만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와 비주류인 비박(비박근혜)계 중 어느 쪽에도 책임을 지우지 않는 등 두루뭉술하게 결론 냈다.

특히, 당 안팎에서 총선 참패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고 있는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의 독단에 대한 지적도 전문가의 발언을 빌리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백서에서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공천 과정에서의 혼란, 특히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독단이 민심 이반의 원인으로 크게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혁신비대위는 백서가 두루뭉술하고 나열 형태로 발간된 데 대해 전당대회를 앞두고 백서 내용을 빌미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질 경우 당이 공멸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은 이날 지상욱 대변인을 통해 "이 백서는 새누리당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게 아니라 냉정하게 우리 현실을 파악해 미래로 전진하기 위한 것"이라며 "당이 어려워진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비박계를 중심으로 한 당 안팎에서는 혁신비대위가 너무 주류의 눈치를 보는 바람에 총선 참패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물 건너갔고 지지층을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기회도 날렸다고 반발했다. 비박계 한 중진의원은 "어디, 마사지(정치적 필요에 의해 진실에 허위를 섞어 의미를 조작하는 작업을 뜻하는 정치권 은어)할 것이 없어서 당의 '사초'에 마사지를 하느냐"며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정당'이 된 새누리당에 앞으로 어느 국민이 지지를 보내겠느냐"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