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못 이룬 올림픽 금메달 꿈 한수와 관욱이가 대신 이뤄주겠죠"
여기 한 사내가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체격이지만 무척 다부져 보인다. 악수를 청하는 굵은 손에서 억센 완력이 느껴진다. 평생 한눈팔지 않고 자신을 가꿔온 덕분이리라.
하지만 그에게 지구는 '좌절의 별'이다. 가슴 깊숙한 곳에 응어리가 맺혀 있다. 20년 전 이맘쯤 세상의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비켜가면서부터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그러나 그는 이제 '위대한 패배자'가 되려 한다. 비록 승리자로 세인에게 기억되진 못하더라도 남몰래 묻어둔 아픔은 털어내려 한다. 든든한 제자들이 꿈을 대신 이뤄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에 도전하는 레슬링 국가대표 류한수'김관욱 선수를 길러낸 황상호(45) 경북공업고등학교 감독의 이야기다.
◆아! 1996년 애틀랜타
황 감독은 1996년 7월 31일 미국 애틀랜타 조지아콩그레스센터에 있었다. 그토록 그리던 올림픽 무대였다. 1992년부터 가슴에 단 태극마크는 이미 익숙했지만 오륜기 아래에서 경기하기는 처음이었다.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레슬링 자유형 68㎏급에서 하울로 이비레(아르헨티나)와 엘샤드 알락크베르디에프(아제르바이잔)를 각각 판정으로 누르고 4강에 진출했다. 메달 유망주다운 선전이었다.
준결승 상대는 1995년 이탈리아 로마 군인체육대회 4강에서 눌렀던 바딤 보기예프(러시아)였다. 자연스레 자신감이 넘쳤다. 결승에 올라 최소한 은메달은 목에 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8강전에서 당한 무릎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죠. 1대 3으로 뒤지다 1점 차로 따라붙었는데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부상에 신경을 쓰다가 제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 게 결정적 패인입니다. 정신력에서 부족했던 것이죠. 결국 상대는 금메달리스트가 됐고, 저는 빈손으로 쓸쓸히 귀국해야 했습니다. 저희 신암동 집에도 취재진이 몰렸다가 모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고 하더군요."
당시 한국은 금메달 7개, 은메달 15개, 동메달 5개를 획득해 종합 10위를 차지했다. 레슬링 대표팀에서는 심권호(그레코로만형 48㎏)가 금메달, 장재성(자유형 62㎏)'박장순(자유형 74㎏)'양현모(자유형 82㎏)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땀의 대가를 보상받지 못한 실망감에 한동안 좌절했습니다. 그해 10월 전국체전에선 대구 대표로 나섰다가 예선 탈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죠. 이듬해 제2회 동아시안게임을 비롯해 국제대회에서 4차례, 국내대회에서 3차례 정상에 오르면서 다시 올림픽 출전을 노렸지만 기회는 오지 않더군요. 그래서 메달리스트 연금도 없어요. 허허."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던 그는 1999년 국가대표에 복귀했다. 하지만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드니 올림픽 출전권은 따내지 못한 그는 우리 나이로 서른이었던 2000년에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류한수와 김관욱을 믿는다
선수로서는 다소 불운했던 그는 2001년,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모교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2년 초 대구 경구중학교 코치로 부임했다가 몇 달 뒤 같은 재단이자 한울타리 안에 있는 경북공고 코치로 옮겼다. 2008년에는 김오식 감독의 뒤를 이어 경북공고 사령탑에 올랐다.
청소년 시절 자신이 6년간 구슬땀을 흘렸던 바로 그 매트에서 새까만 후배이자 제자인 아이들과 함께 뒹군 게 벌써 14년째다. 그중에는 그의 뒤를 이어 올림픽 출전 티켓을 거머쥔 선수도 있다. 다음 달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 사냥에 나서는 류한수(그레코로만형 66㎏급)와 김관욱(자유형 86㎏급)이다.
"저희 학교가 이번 레슬링 국가대표선수 5명 가운데 2명을 배출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대한민국 최강을 넘어 세계 최고로 발돋움해야죠.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수와 관욱이 경기는 꼭 지켜보며 목이 터지라 응원할 겁니다. 두 녀석도 며칠 전 저와 통화하면서 '무조건 메달을 따오겠다'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류한수는 한국 남자 레슬링의 '간판'이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2014년 아시안게임,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잇따라 목에 걸었다. 전국체전에서는 경북공고 시절을 포함해 모두 7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생애 '그랜드슬램'에 남은 것은 올림픽뿐이다.
"제가 처음 부임했을 때 한수가 중학교 3학년이었을 겁니다. 말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상남자'였지요. 다만, 기초체력이 부족해 레슬링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훈련을 빼먹고 도망을 가서 제가 붙잡아온 일도 수두룩하지요. 얼마 전 학교에 찾아온 한수가 '후회하지 않는 경기를 하겠다'고 다짐하던데, 20년 전 제 모습이 떠올라 뭉클하더군요."
김관욱은 2014년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다. 경북공고'영남대 시절인 2007~2010년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기대주다. 류한수와 마찬가지로 올림픽 무대는 처음이다.
"관욱이는 처음에 살을 빼러 레슬링부에 들어왔지요. 중학교 1학년 때 몸무게가 60㎏이 넘는 과체중이었는데, 3개월 훈련하고서 15㎏을 감량했습니다. 그만큼 성실한 '운동 모범생'입니다.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약점을 극복하고 자신감 있는 경기를 펼친다면 이번에 좋은 소식을 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인생 즐기는 너희가 챔피언"
경구중과 경북공고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레슬링 명문'이다. 1976년 레슬링부 창설 이래 각종 대회에서 전국 최정상급 전력을 자랑해왔다. 그가 감독을 맡은 이후에 수확한 메달만 해도 100개가 훌쩍 넘는다.
하지만 레슬링에 인생 승부를 걸겠다는 학생이 점점 줄어 황 감독의 고민이 깊다. 그가 다니던 시절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각각 30명 이상의 선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경구중 10명, 경북공고 14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중'고교 팀 중에서는 가장 많은 편이다.
"예전과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죠. 배고파서 운동하겠다는 애들은 이제 없거든요. 학생 지도 역시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희가 배웠던 스파르타식 훈련은 곤란합니다. 학생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이고요. 왜 운동하는가에 대해 서로 공감해야 하고, 운동을 함께 즐겨야 합니다. 제 노래방 18번인 싸이의 '챔피언' 가사처럼요."
실제로 레슬링은 올림픽 퇴출 위기에 몰린 바 있다. 2013년 1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집행위원회에서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레슬링을 제외하겠다고 결정, 스포츠계가 발칵 뒤집혔다. IOC가 나중에 이 결정을 스스로 철회하면서 레슬링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변화해야 살아남는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
"레슬링은 잘 아시다시피 손꼽히는 효자 종목입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자유형 62㎏급) 선배님이 해방 이후 첫 금메달을 따내는 등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금메달 11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3개를 가져왔습니다. 이번에도 다섯 명의 국가대표 후배들이 메달에 도전합니다. 저희도 열심히 할 테니 국민 여러분도 뜨겁게 응원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황상호 감독은?
선수 시절 낮게 파고드는 경기 스타일 덕분에 '두더지'란 별명을 얻었던 황 감독은 1971년 합천 용주면 성산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대구로 옮겨와 경구중'경북공고와 계명대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했다. 모교인 경북공고에는 2002년 코치로 부임, 2008년부터 감독을 맡고 있다.
황 감독은 스포츠 가족이다. 대한씨름협회와 국민생활체육전국씨름연합회가 통합하면서 지난 3월 출범한 '통합씨름협회'의 황경수 이사가 삼촌이다. '천하장사' 이만기 선수를 중학교 때부터 지도한 씨름판의 '대부'로 유명하다. 황 감독의 선친 역시 '씨름 고수'였고, 육상선수 출신인 셋째 누나는 체육교사로 교단에 서고 있다.
고교 시절 사격선수였던 부인 윤은정(44) 씨와 사이에 외동딸을 둔 황 감독은 "어릴 때 체격이 너무 작아서 삼촌의 권유로 모래판 대신 매트에 섰는데 딸은 키가 커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딸이 운동을 잘하느냐는 질문에는 "피가 어디 가겠느냐"면서도 "엘리트 선수가 될지는 중학교에 간 뒤 지켜봐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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