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용후핵연료는 디스토피아인가?

입력 2016-07-10 19:11:57

지난달 17일 서울 양재동에서 개최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에 대한 공청회'는 고성과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로 뒤범벅된 현장으로 갈등의 상징적 장면이다. 새벽부터 노구를 이끌고 서울 공청회장을 찾은 어르신의 절규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음직한 욕을 먹고 폭행까지 당할 뻔한 산업부 정책관도 현재 그 자리에 있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려는 것일 것이다. 각자 너무도 귀한 사람들인데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유'무형의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되는 이러한 모순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이번 공청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5월 25일 행정예고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의 행정절차에 의한 것이지만, 정부와 지역민과의 갈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다. 갈등의 원인은 대략 3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첫째 정보 신뢰의 문제다. 우리가 쓰는 전기의 30%를 공급하는 원자력 발전은 사용후핵연료라는 부산물을 남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대부분이 사용후핵연료다. 원전 운전원들이 쓰는 마스크나 장갑 등 중저준위 방폐물에 비해 열과 방사능이 높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는 고준위 방폐물은 현재 각 원전의 저장고인 수조에 보관되어 있다. 방폐장 선정 과정에서 정책 실수도 있었고 불투명한 소통으로 불신을 초래한 잘못도 있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이슈에 대한 인식도 아직 부족함이 있는데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 노력이 중요하다.

둘째 관련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과학기술 정보는 전문 분야라 아는 사람에겐 당연한 일도 모르는 사람에겐 큰일로 인식된다. 특히 사용후핵연료 관련 기술은 약이나 교통 관련 정보처럼 생활 밀착형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은 작지만 위험 인식은 훨씬 크다. 원전에 대한 두려움이 관련된 모든 정보에 대한 위험 인식만 증대시킨다.

셋째 비겁함의 문제가 있다. 원자력 관련 쟁점은 마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대립을 보는 것 같다. 원자력계는 기후변화 시대 최적의 경제적 에너지원이 원자력이라면서 원전 옹호만 하고, 반대쪽에서는 탈원전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가 쓴 전기부산물,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눈치 보기나 무시하기로 일관한다. 메뉴나 요리 방식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음식쓰레기 처리는 나 몰라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음식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대전제에 동의한다면, 논의의 시작은 어떻게 치울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혐오시설이라 할 수 있는 음식물쓰레기 처리장, 화장장시설, 소각장 등 폐기시설물은 다 싫어하지만, 불가피하게 필요한 공공 설비다. 문제는 위험에 대한 대처 방식이며, 그 위험을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해 나갈지에 논의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도 마찬가지다. 각 원전지역에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안전하게 처리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데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사안을 풀어가는 과정은 냉정해야 한다. 공중 입장에서는 정확하고 객관적 정보에 대한 요구를 하되 그 의미까지 폄하하고 과정을 방해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공중은 최소한 정부가 공언한 부분을 제대로 지키도록 과정을 열어주고 요구해야 한다. 정부의 소통하겠다는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지역의 언론이, 시민사회가, 지자체가 나서서 요구하고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유토피아만 그리거나 디스토피아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현실을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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