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참여마당] 수필: 고동각시 퇴치법

입력 2016-07-06 18:19:59

# 고동각시 퇴치법

노래기를 우리 고향에서는 고동각시라고 했다. 묵은 초가지붕에서 이 고동각시가 많이 나왔다. 이 벌레가 부엌으로, 마루로, 방으로도 기어 들어와 지독한 냄새를 풍겨서 사람들이 싫어했다. 눈에 띄는 대로 쓸어내고 또 쓸어내지만 좀처럼 끝나지 않아 골머리를 앓았다. 이 벌레는 초가지붕이 오래될수록 더 많이 번성한다.

내가 어릴 때 우리 마을엔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선비가 있었다. 농사를 짓지 않으니 초가지붕을 해마다 새로 덮지 못하여 그 고동각시가 유별나게 더 많이 생겼다. 아무리 쓸어내도 자꾸 들어오는 벌레를 어찌하면 없앨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묘안이 떠올랐다. 옳지 이놈들이 알아듣게 방을 써 붙여야지. 선비는 창호지를 저고리 동전만큼씩 좁다랗게 자르고 그걸 다시 한 뼘 남짓씩 잘라서 거기에다 붓으로 글씨를 썼다. '고동각시 속거천리 원거천리' 이것을 여러 장 써서 처마 끝에 매달았다. 속거천리는 속히 천 리나 도망가라는 말이고, 원거천리는 멀리멀리 천 리나 가라는 말이다. 그 선비가 생각하기로는 아무리 벌레들이라 하지만 이 글을 보면 천리만리 도망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석가래 끝마다 종이를 매달아 놓으니 마치 무당집처럼 보였다.

옛날 사람들은 그만치 생각이 막혀 있었던가 보다. 그 벌레들에게 쉬운 우리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할 건대 어려운 문자를 써서 멀리 도망가라 했으니…. 이런 엉뚱한 노래기 퇴치 방법은 국어사전에 실려 있는 걸로 봐서 우리 마을의 그 선비만이 아니고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는 이런 것 말고도 환자가 생기면 엉뚱한 방법으로 병을 물리치려고 했다. 학질을 앓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병을 도둑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도둑처럼 밤에 몰래 갑자기 찾아온다고 그랬던 것 같다. 그걸 치료하는 약이 없어서 처방이라고 생각해 낸 것이 그 환자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몹시 남세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환자를 밤에, 여러 사람이 둘러메고 온 마을을 돌면서 외쳤다. '남의 집 며느리 낮으로 잠자고 밤으로 마실가네!' 이렇게 합창을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음침한 곳에 혼자 내려놓고 '귀신이다!' 하며 달아났다.

또 남의 집 잔치나 제사나 초상집에서 음식을 먹고 탈이 잘 났는데 이건 음식 보관을 비위생적으로 했거나 여름 더위에 변질된 음식을 먹어서 탈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건 객귀(客鬼: 떠돌아다니는 귀신)가 덤벼서 생긴 병이라며 그 귀신을 쫓는 처방을 했다. 바가지에 밥을 조금 담아 그걸 물에 말아서 왼손에 잡고 오른손에는 식칼을 든다. 환자를 마당 한가운데 앉혀 놓고 그 식칼로 환자 머리 위를 휘휘 내두르면서 큰소리로 외친다. '훠세-이놈의 귀신아 오늘 네가 이 밥을 먹고 썩 물러가야지 만일 더디게 나갔다가는 내가 모진 진언을 쳐서 너를 천길만길 지옥에 빠져 옴짝도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이 밥을 먹고 썩 물러가거라. '훠세-' 그러면서 식칼을 삽짝 쪽으로 던진다. 던진 식칼의 끝이 밖으로 향했으면 귀신이 나간 걸로 여기지만 칼끝이 안으로 향해 떨어지면 귀신이 아직 나가지 않은 걸로 생각하고 다시 더 강한 어조로 귀신에게 겁을 준다. '니가 내 말을 안 듣고 그냥 있는 걸 보니 정말 모진 진언을 한 번 들어 봐야 하겠나. 내가 네 이름도 알고 성도 다 알고 있다. 좋은 말할 때 이 밥을 먹고 썩 물러가거라. '훠세-' 하며 다시 칼을 던져서 칼끝이 밖으로 나가면 그 자리에 십자를 긋고 중심에다 칼을 꽂은 다음 음식은 밖으로 뿌리고 빈 바가지를 칼 위에 엎어 놓는다.

이런 처방은 나도 여러 번 겪었다. 사람이 아픈 건 모두 귀신이 덤벼서 그런 거고, 냄새가 고약한 벌레는 멀리 도망가라고 글을 써서 붙였으니. 생각할수록 웃기는 지난 세월이었다.

지금은 이런 게 다 없어졌을까? 돼지꿈이나 용꿈을 꾸었다고 로또 복권을 사고, 그것도 일등이 잘 나오는 명당자리 점포에 가서 사겠다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또 사업이 잘 안 되거나 가정 불화가 자주 일어나거나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점쟁이한테 찾아가 굿을 하고, 큰돈을 주고 부적을 사서 지니게 한다. 또 이사를 하는 것도 어느 날, 어느 쪽으로 가야 운이 트인다고 믿는 사람, 조상의 산소를 명당에 모셔야 출세를 하고, 돈을 잘 벌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이 있으니 말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의지하려는 심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곽종상 (대구 남구 큰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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