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學)으로 본 '70'] 인문학 속의 '70'

입력 2016-07-06 16:53:29

고문과 문학작품에는 70세를 주로 장수 또는 은퇴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고문과 문학작품에는 70세를 주로 장수 또는 은퇴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인생 70세를 '고희'(古稀)라고 한다. 이 말은 두보(杜甫)가 지은 '곡강시'(曲江詩)에 나오는 '외상 술값이야 세상 어디나 보통 있는 일이지만, 일흔까지 사는 사람은 예로부터 드물기만 하다네'(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라는 명구에서 유래했다. '사람은 70세까지 살기가 드문 일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당시엔 70세를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70세를 장수의 복을 누린 상징처럼 여겼을 터이다. 이 외에도 '70'은 다양한 고문이나 문학작품 속에 등장한다. 어느 작품에, 어떤 뜻으로 쓰였을까.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정우락 교수와 금오공대 국어교육대학원 송지혜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70에도 색동옷을 입고

중국 춘추시대의 은사(隱士)인 노래자(老萊子)가 칠십의 나이에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었다는 고사가 있다.

◆70은 종심(從心)

'논어' 위정(爲政)에는 "내 나이 일흔 살이 되자, 이제는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따라 해도 법도에 넘치는 법이 없게 되었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공자가 나이 70에 이치를 비로소 통달하니, 이후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해도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고 한 것을 '종심소욕 불유구'라고 한 것이다.

◆70자(子)

걸출한 문하생을 뜻하는 말이다. '맹자' 공손추상(公孫丑上)에 "70명의 제자가 공자에게 열복(悅服)하였다"(七十子之服孔子也)라는 말이 나온다. 또 '사기'(史記) 권47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공자가 시서예악을 교재로 가르쳤는데, 제자가 대개 3천 명에 이르렀으며, 그중에서 육예를 몸으로 통달한 사람은 72인이었다"(孔子以詩書禮樂敎 弟子蓋三千焉 身通六藝者七十有二人)라는 말이 있다.

◆70 치사(致事'致仕)

'예기' 곡례상(曲禮上)에 "대부는 나이 칠십이 되면 일을 그만둔다"(大夫七十而致事)라는 말이 있다. 또 백거이(白居易)의 '불치사'(不致仕)라는 시 첫머리에도 "칠십에 벼슬을 그만둔다고, 예법에도 분명히 기록되었네"(七十而致仕 禮法有明文)라는 말이 있다. 옛 사람들은 나이가 70에 이르면 일이나 벼슬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국지 권26 '위서(魏書) 전예전(田豫傳)'에는 "나이 칠십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벼슬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비유하자면, 인경의 종이 울리고 물시계가 다했는데도 그치지 않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이는 죄인이다"(年過七十而以居位 譬猶鍾鳴漏盡而夜行不休 是罪人也)라는 문구도 있다. 벼슬이든 일이든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이를 모르고 무조건 계속할 경우 남의 비웃음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70세에 기로사에 들어간다

도곡의 '기년록'에는 "14년 무오년에 70세가 되어 정월 초하루에 기로사에 들어갔다. 국조에 문신으로 재직 중인 자로서 정2품이며, 나이 70세 이상인 자를 위해 한 관사를 설치하여 대우하였는데, 이름을 기로사라 하였다. 이해에 내 나이가 여기에 이르러서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무오년은 영조 14년(1738)이며, 기로사(耆老社)는 일흔 살이 넘은 정2품 이상의 문과 출신의 신하들을 예우하기 위해 국가에서 설치한 관사다.

◆인간의 수명

박경리의 '토지'(1993)에는 70이 인간의 수명이었다는 글귀가 있다. "인간 수멩이 칠십이라 카든가? 날포리는 하루를 살다가 가고 거북이는 천 년을 넘기 산다 카는데 곰곰이 생각하믄 어느 기이 질다 짧다 할 수도 없일 기구마"라는 내용을 보면, 70세는 최근까지도 장수의 대명사로 생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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