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마에는 충돌의 흔적이 아직도 뚜렷하다. 이마에 불이 번쩍하며 충돌한 그 물체는 바로 야구배트. 배트와 뽀뽀하게 된 사연은 투수이던 오빠를 저녁 시간이 되어 찾으러 갔던 것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야구장, 풋살장, 농구장 등이 용도에 맞게 갖춰져 있지만, 우리 어린 시절에는 동네 공터는 다목적 공간이었다. 그곳은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에 따라 야구장이 되기도 했다가 소꿉놀이 공간이 되기도 했다가, 명절에는 주차장이 되기도 하는 용도가 불분명한 곳이었다.
그날 그곳의 용도는 야구장. 당시 중학생이던 오빠는 잘나가던 동네 투수였고, 나는 그저 오빠를 부르기 좋은 투수 뒷자리로 가서 오빠를 목청껏 불러 엄마의 지령 전달에 성공하는 것에 충실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투수 뒷자리에서 어린 내가 오빠를 불렀던 것. 오빠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투수를 제외하고는 경기에 집중한 중학교 오빠들은 나를 보지 못했고 하필 타자 오빠는 그날따라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딱! 소리와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고, 눈을 뜨니 나는 소아과 병원에 팔다리가 잡힌 채 눕혀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소아과에서는 꽤 길게 찢어진 상처를 단 3바늘로 마무리했고, 배트로 나의 이마를 가격(?)한 오빠는 타의에 의해 그날 이후 나의 장래 신랑으로 점지됐다. 그 오빠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어른들이 결혼해야 한대서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 오빠를 볼 때마다 수줍어하며 인사를 했더랬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오빠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일찌감치 장가를 가 버렸고, 이후 그 댁 어른들은 나를 피해 결혼을 서둘렀다는 농담으로 그날의 해프닝을 웃으며 이야기하곤 했다.
나를 두고 장가 가버린 타자 오빠에 대한 상처(?)는 잊힌 일임에도 야구 배트와의 충돌은 오른쪽 이마에 3㎝ 정도의 흐린 상처를 여전히 남겨뒀다. 덕분에 나는 야구 경기의 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이후 또 맞을까 걱정하다가 오빠와 함께 야구 경기를 열심히 봤기 때문이다. 야구 얘기가 나오니 더 더워지기 전에 새로 개장한 야구장에나 가야겠다. 야구 룰을 배우는 대신 얻은 영광의 상처(?)를 기억할 겸.
◇ 2009년 小史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노무현 전 대통령이 5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뒷산의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서거했다. 노무현은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한 뒤,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2002년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퇴임한 뒤 고향인 봉하마을에 귀향했으나 재임 중 친인척 비리로 조사를 받다가 자살했다.
▷신종 플루 발생=신종 플루가 발생, 전 세계 200여 개 국가로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공식 확인된 사망자 수만 1만 2천 명에 이르렀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김 추기경은 1922년 대구에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막내로 출생해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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