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장마가 끝이 났다. 이제 가마솥더위와의 사투다. 지난겨울 갈라선 죽부인을 다시 안아 봐도, 달달 숨 넘어 가는 선풍기를 혹사시켜도 대구의 찜통더위를 쫓긴 힘들다. 여름철 불청객 매미는 또 어떤가. 매미 위세에 한철 메뚜기는 명함도 못 내민다.
매미 소리만 놓고 치면 대구는 서울에 비해 그나마 양반이다. 매미 중에서도 서울 매미가 더 크게 운다. 짝을 부르는 소리여서 주변이 시끄러우면 매미는 더 굵고 드세게 맴맴댄다. 짝짓기하려는 본능, 누굴 탓하랴.
비록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지만 매미는 군자의 본보기로 통했다.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은 매미가 다섯 가지 덕, 오덕(五德)을 갖췄다고 했다. 곧게 뻗은 긴 입이 선비의 갓끈 같다고 해 문(文)덕이요, 이슬과 나무 수액만을 먹고 맑아 청(淸)덕을 지녔다. 메뚜기처럼 곡식이나 과일을 해치지 않은 탓에 염(廉'염치)덕까지 있다. 또 다른 곤충과 달리 제 살 집조차 짓지 않고 검소해서 검(儉)덕, 마지막으로 올 때 오고 겨울 전에 갈 줄 안다고 해 신(信)덕을 가졌다. 육운의 매미는 오덕이 소음이란 치부를 가렸나 보다.
소위 '금배지'라 불리는 지역 국회의원들도 매미의 오덕을 지녔다. 짝퉁이긴 하지만.
얼마 전 백지화 된 신공항을 두고 서울의 정치권과 언론의 울음소리는 컸다. 부산도 이에 버금갔다. 수도권 공화국을 지키고자, 제2의 도시의 명성을 수성하기 위해 신공항 무용론과 가덕도를 들고 울부짖었다. 국토균형발전 등 대의는 무시됐다. 김해공항으론 안 된다던 논리가 촉발한 밀양 대 가덕도 신공항 경쟁은 김해공항으로 도돌이표를 찍었다.
그동안 대구경북의 금배지들은 무얼 했나. 울음은 없고 입을 닫았으니 짝짓기(신공항)는 언감생심. 박근혜정부에 몰표를 주고 정권 재창출의 일등 공신인데도 녹봉은커녕 있는 곳간마저 내줄 처지다. 재산이 거덜나도 아랑곳하지 않으니 검덕을 지녔다. 대통령 눈치만 보다 핏대 한 번, 목젖 한 번 꺾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낄 때 안 낄 때를 안다. 신덕을 갖췄다. 신공항 무산으로 지역 경제는 비상할 기회를 놓쳤다. 아닌 말로 손가락 빨면서 이슬만 먹고살라는 데 청덕은 덤이다.
금배지들은 한술 더 뜬다.
굳이 사기의 고사까지 들추지 않더라도 지록위마(指鹿爲馬'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인다)의 정수를 보여줬다. 대통령이 사슴(김해공항)을 보고 말(신공항)이라고 하니 다들 김해공항을 신공항이라 찬양한다. 지난 총선에선 밀양 신공항으로 표 장사하더니 이제 와서 신공항 대책회의에는 꽁무니를 뺀다. 이른바 친박 실세 의원들은 대놓고 김해공항을 두둔하기까지 한다. 목이 달아날지언정 사슴이요 외치는 위인(?)은 찾아볼 수 없다.
적어도 지역 정치인들은 매미의 오덕은 아닐지언정 오적(五敵)은 되지 말았어야 했다. 매미의 염덕과 검덕은 눈곱만치도 없고 권력의 시녀가 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메뚜기 정치인만 판친다.
다가오는 대선, 4년 뒤의 총선 때면 신공항 공약을 들고 또 표 달라고 엎드리겠지.
털릴 곳간도 집도 없어 검덕이 자연스레 삶이 된 지역민들은 목이 맬 뿐이다. 이제라도 속지 말자. 나도 속고 시도민도 속았지만 앞으로는 철저하게 검증하자. 신문, 방송, 인터넷을 뒤져 지역 금배지들이 어느 행사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신공항 관련 이력을 낱낱이 기억하자. 정치인의 말 한마디 단어 한 조각 등 신공항 이력을 단디 추적하자. 그리고 그에 맞춰 표를 주자. 신공항 무산은 없다던 정부를 언급해 무엇하랴.
믿을 수 없는 정부와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짖어야 할 때 짖지 않는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이미 추락했다. 지키지도 못할 공약으로 새 활주로를 깔아도 배신당한 민심을 띄우진 못할 것이다.
올여름엔 매미 소리라도 우렁차야 신공항으로 낙담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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