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보고 싶다-제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가작

입력 2016-06-29 16:57:20

살아갈수록 후회스럽고 용서를 빌 일이 많다. 아내는 나이 탓이란다.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능력이 없고 인격적으로 수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좋은 상황에서는 누구나 좋은 말을 하고 좋게 대할 수 있다. 어렵고 힘든 처지나 곤궁한 상황 속에서는 달라진다. 갖춘 능력이 없으면 별것 아닌 것도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인격 수양이 모자라도 상대를 배려하고 먼저 챙기기가 쉽지 않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이기적인 심성이 더 잘 드러난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당신은 아흔다섯부터 아흔아홉까지 오 년이란 긴 세월을 노인요양병원에서 보냈다. 돌아가시는 날도 병원에서 혼자였다. 나는 불효자다. 어머니 모시기의 능력과 인격의 모자람을 일화로 보여주고 용서를 빌고 싶다.

돌아가시기 오래전이다. 어머니는 내가 서재에 있으면 옆에 있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컴퓨터 책상 앞에는 의자가 둘 있다. 하나는 컴퓨터 작업을 할 때 내가 앉는 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 의자다. 가끔 손을 한 번씩 잡아주면 힘없는 웃음을 입가에 띨 뿐 가만히 앉아 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먼저 말을 걸지도 않는다. 당신의 손을 만지작거리거나 가끔 뒤틀린 자세를 바로잡을 뿐이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공부할 기회를 잃어 글자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옆 의자에 앉아 쳐다보고 있어도 내가 컴퓨터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거의 움직임이 없이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오월이다. 담장 밑에 심어 놓은 덩굴장미에 꽃이 피었다. 며칠 전 가지 끝에 몇 개의 붉은 꽃송이가 보이더니 오늘은 꽃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낮의 햇볕을 받으며 연초록의 잎과 어울려 아름답다. 쳐다볼수록 깨끗하고 눈이 부신다.

그렇다. 어머니에게 장미꽃 구경을 시켜야겠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때 마당 가에 작은 꽃밭을 만들어 놓고 사철 여러 가지 꽃 가꾸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쩌다 닭이나 강아지가 들어가 꽃을 망가뜨리면 그렇게 아까워했다. 봉선화 붉은 꽃잎을 따다 누이의 손톱에 정성껏 붉게 물들여 주기도 했다.

어머니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지 않으면 마음대로 뜰을 거닐 수 없다.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손을 잡고 현관을 나섰다. 장미꽃은 집 안에서보다 대문 밖에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를 배려한 아들의 마음이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구나." 순간 나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봤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아름다운 장미꽃이 보이지 않는다니. 어머니는 눈에 백내장이 있다. 좀 떨어져 있는 물체는 그 형체만 보일 뿐 색상이나 자세한 부분은 볼 수 없다. 나는 그 생각을 못 했다.

참으로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남도 아닌 어머니의 건강 상태를 잊고 있다니 말도 안 된다. 어머니는 아직 아들이 공부한다면 방해가 될까 싶어 조심조심하는데 나는 어머니를 위한다는 것이 볼 수도 없는 장미꽃이나 구경시켜 주려고 했단 말인가?

어머니께 용서를 빌어본다. 용서(容恕)란 말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준다는 뜻이다. 삶을 돌이켜 볼 때 내가 용서를 했거나, 해 주어야 할 일보다 용서를 받거나, 바라거나, 빌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았다는 생각이다.

용서받는 일이 참으로 힘들다고 한다. 용서를 받으려면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반성하며, 상대를 이해하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지난날의 잘못된 나의 선택을 진심으로 회개한다. 지금은 피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빌어도 용서해 줄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영원히 불효자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 정신이 전과 같지 않다. 종종 마을을 나가서는 집을 찾아오지 못하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체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맨다. 운 좋게도 마음씨 좋은 사람을 일찍 만나게 되면 쉽게 모셔올 수 있다. 그렇지 못해 몇 시간씩 거리를 헤매는 경우도 잦다. 동네 사람들은 노인 모시느라 고생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참으로 부끄럽고 죄스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남들은 어머니를 보고 치매가 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치매가 아니다.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머니는 아기가 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세 살쯤 된 아이다. 걸음이 어둔하여 혼자 걷다가 넘어지고, 매사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떼쓰고, 눈에 보이는 물건에 대한 욕심을 내기 시작하는 나이다. 무엇이나 갖고 싶어 하고 무엇이나 먹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다. 보는 대로 서랍장 속에 갖다 넣는다. 먹는 것에 대한 애착은 본능적이라 할 만큼 대단하다.

음식은 나누어 먹어야 정이 나고, 정은 나눌수록 복 받는다는 당신의 생활 철학은 어디에 버리고 무엇이든지 챙기려고만 한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어디에 무엇을 두었는지 까맣게 모른다. 시골에 살 때 이웃과 음식 잘 나누어 먹고, 당신보다 못한 사람만 보면 도와주려고 애쓰시던 너그럽고 여유 있던 마음은 찾을 수가 없다. 잡고 있는 손에서 어머니의 가벼워진 마음의 무게를 느낀다. 어머니의 지금 마음은 아기의 마음이다. 천진무구한 아기처럼 사리를 분별할 줄 모른다. 아기의 마음은 천사의 마음이다. 몰라 저지르는 잘못은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으나 집 앞까지 오도록 내가 누구인지 몰라본다. 가슴이 아프다. 아기가 되어 예상치 못한 저지레를 해도 좋다. 집을 나가 숨이 차도록 찾아다녀도 좋다. "어머니 오래 사십시오. 남보다 잘 모시지는 못해도 내 힘 닿는 대로 정성을 다해 성의껏 봉양하겠습니다. 정신을 가다듬어 저를 보고도 못 알아보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렇게도 사랑하던 외아들 ○○이가 아닙니까."

오늘 밤에는 어머니 다리를 좀 주물러야겠다. 아기로 변해 가는 어머니의 마음에 행복을 가득 느끼게 해 드리고 싶다. 나를 쳐다보고 의미 없는 웃음을 한 번 웃는다. 그래도 웃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기 좋다.

어머니의 나이 구십넷을 넘자 갑자기 기력이 많이 쇠했다. 지난해부터는 귀가 어두워져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고, 걸음을 걷는 데도 힘들어한다. 화장실 출입도 당신 혼자서는 하지 못한다. 정신마저 쇠약해져, 앞뒤 맞지 않는 말로 아내를 가슴 아프게 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되지 않는다. 과거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하고 억지를 부린다.

집에서 모시기 힘들어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집이 텅 비어 있는 것 같고, 방에서 금방이라도 헛소리를 하시며 나를 찾는 듯하다. 어느 한 사람도 반겨주지 않는 삶을 힘겹게 영위하고 있는 병실의 어머니가 너무 안타깝다. 곁에 앉아 야윌 대로 야윈 손을 살며시 잡고 용서를 빈다. 초점 잃은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 대답할 기운마저 잃어가고 있다. 가슴이 찢어진다. 내가 어머니를 기쁘게 해 준 것보다 어머니가 내게 즐거움과 행복을 준 일이 몇천 배 더 많다. 용하게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 가신 지 오년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모시지 못하고 현대인의 고려장이라는 노인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한 죄인이다. 어머니께 용서를 빈다. 용서는 맺히고 막힌 관계를 풀고 다시 어깨동무하며, 과거를 털어내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라 하지 않는가. 어머니가 보고 싶다.

#다음 주는 수필 부문 가작 수상작인 황봉구 씨의 '공비와 6'25전쟁'이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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