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15일 사형선고를 받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예정보다 총살형이 앞당겨진 김수임은 뛰어난 여성이었다.
개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1살에 팔려가다시피 시집간 뒤, 야반도주해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했다. 우수한 영어 실력으로 세브란스병원 미국인 통역으로 취직한 그녀의 운명은 이강국을 만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이미 유부남이었던 이강국은 경성제대 법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유학을 다녀온 당대 최고의 엘리트이자 열혈 공산주의자였다. 광복 후 이강국이 공산주의 활동에 전념할 때, 김수임은 베어드 미군 대령과 동거에 들어갔다. 1950년 2월 합동수사대가 김수임을 체포할 때 무려 19가지 간첩 혐의를 제시했다. 이화여전 후배 전숙희는 "사랑밖에 몰랐던, 그리고 너무 순진했던 (사람)"이라고 그녀를 평가했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라는 주장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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