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世事萬語] 귀농 판타지

입력 2016-06-14 19:04:35

2004년 극장가에 '시실리 2㎞'라는 영화가 내걸렸다. '신개념 펑키 호러물'이라고 했다. 순박해 보이는 시골 농사꾼들(사실은 마을로 숨어든 전과자들)이 다이아몬드 앞에서 흉악한 본성을 드러낸다는 내용이다. 예초기를 휘두르는 그들 앞에서 조폭들이 무릎을 꿇고 원귀도 고개를 젓는다. 원래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인간의 탐욕이다.

시골 생활을 꿈꾸는 도시인들이 많다. 텃밭을 가꾸고 고즈넉한 전원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그러나 도시 생활을 접고 귀농귀촌한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시골 생활이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는 않는다. 도시 못지않게 삶이 고달프고 특히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농촌에 집을 지은 A씨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시골에서는 현지인들과의 적당한 거리 두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말을 좀 나눴다 싶으면 남의 사생활에 대한 배려가 없어요. 술 마시자며 아무 때나 집에 찾아와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주민들과 왕래를 끊었더니 따돌리는 거예요. 집으로 들어오는 길을 농기계로 막아버리기까지 하더군요."

놀랍게도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가 지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바다출판사)라는 책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47년간의 농촌 생활을 겪은 저자는 현실도피로서의 귀농귀촌 생각일랑 일찌감치 접으라고 충고한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골행을 감행하면 은퇴자금을 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만신창이가 되어 도시로 되돌아가기 십상이라고 했다.

요즘 들어서는 시골이 도시보다 딱히 안전해 보이지도 않는다. 시골 경로당에서 독극물 음료수'막걸리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지역사회를 뒤흔들고, 외딴 섬에서 홀로 근무하는 여교사가 학부모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여교사 성폭행 사건 직후 인터넷의 한 커뮤니티에는 '여자가 홀로 시골에 가면 생기는 일'이란 글이 올랐다. 귀농귀촌 경험자들의 어려움을 모은 글이었는데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함과 동시에 공감성 답글들이 줄을 이었다.

시골은 그래도 도시에 비해 온정이 살아있고 인심도 넉넉한 편이다. 그러나 텃세와 배타성, 절제되지 않은 관심 과잉 탓에 외지인들로서는 불편함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놀러 갔을 때와 살러 갔을 때의 시골은 엄연히 다른 세상이다. "안 되면 촌에서 농사나 짓지 뭐"라는 생각만큼 순진한 판타지도 없을 것이다. 만일 시골행을 생각한다면 분명한 목표의식과 강인한 마음가짐부터 점검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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