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아침마다 동시를 적어 담임선생님께 검사를 맡았던 기억이 난다. A4용지 사이즈의 연습장에 시를 적고 색연필로 그림도 곁들였다. 그때 당시 선생님은 동시 쓰기가 학생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정서적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기보다 동시 쓰기가 더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써야 할 글이 짧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시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단어에 담긴 함축된 의미를 찾아내는 게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특히 언어영역 문제집을 풀 때마다 주제 찾기와 비유 및 상징을 나타내는 시어 고르기는 빠지지 않는 단골 문제였다. 시가 왜 어려운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상상력이 작가의 상상력에 못 미쳤거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시를 읽는 재미가 덜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좋아한 시 한 편이 있는데, 바로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다. 연인에게 보내는 연가 형식으로 쓴 시다. 담담한 어조로 읊조리듯 고백하는 내용이 곱씹을수록 그 의미가 흰 천에 물감 스며들듯 전해진달까. 며칠 전 상자 속 CD를 꺼내 정리하다 황수정의 '고백'이라는 시 낭송집을 발견했다. 잔잔한 배경음악 속 감미로운 목소리가 마치 노랫소리와도 같았다.
시는 생각해보면 문학 장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음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뜻하는 Lyric이라는 단어는 Lyra라는 악기 이름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시는 언어의 운율로 표현된다. 억양을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운율을 만드니 일정한 리듬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시는 묵독하기보다는 읊어야 그 의미가 더욱 잘 전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시낭송을 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흔히 은유를 일컫는 '메타포'도 운율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백합 같은 여인'에서 백합의 희다, 아름답다, 순결하다 등과 같은 성질이 여인의 속성을 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낸다. '백합'과 '여인', 이 두 단어는 공간적으로 백합과 여인을 연관시켜 여인에 대해 더욱 풍요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든다. 동일한 뜻의 반복으로 의미상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시낭송은 특색 있는 하나의 공연 장르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시는 문학이기 때문에 공연으로 받아들이기 어색할 것도 같지만, 배경음악에 덧입혀진 낭독의 목소리는 여느 악기 소리 못지않게 감동을 준다. 피아노 혹은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어우러지는 사람의 음색에서 작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단어 사이, 문장 사이마다 내딛는 호흡에 머릿속은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시도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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