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와 다름없던 소 여물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거라
요즘 소와 노는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소라고 하면 그저 먹는 식용밖에 생각나지 않을 시대에 살고 있지만 1980년대까진 우리 삶의 버팀목이었다. 농업의 기계화가 시작되기 전, 소는 농촌의 최대 재산이었다. 소 판 돈으로 대학을 다닌 중년들이 꽤 많이 있을 법하다. 소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내던 시절, 소를 사랑하는 건 당연하다. 가족 이상으로 대접받던 소였다.
얼마 전 모내기 철이 한창이었는데 이 모내기 철이 끝나면 소에게도 방학이 있다. 한동안 농사에 바빠 소에게 풀 먹일 시간이 없던 차에 모내기가 끝나면 뒷동산에 올라 소치기를 했다. 동네 꼬마들끼리 나무에 소를 매어놓고 정신없이 놀다 돌아오면 어떤 날엔 소가 없어지기도 했다. 소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소가 오디로 갔노?" 이리저리 소를 찾던 아이들이 금세 울상이 되었다. 한 번씩 고삐 풀린 소들이 산 정상 쪽에서 무리지어 헤매던 일이 종종 있었다. 잃어버린 소를 찾아 온 산을 헤매던 기억들이 어슴푸레하다.
우리에겐 소와 관련된 관용구들이 많이 있다. '푸줏간에 들어가는 소걸음'(벌벌 떨며 무서워하거나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모양), '소 잡은 터전은 없어도 밤 벗긴 자리는 있다'(큰 짐승인 소를 잡은 흔적은 없어도 조그만 밤을 벗겨 먹고 남은 밤송이와 껍질은 남음), '큰 소가 나가면 작은 소가 큰 소 노릇 한다'(어떤 집단이나 단위에서 윗사람이 없으면 아랫사람이 그 일을 맡아본다), '도랑에 든 소'(도랑 양편에 우거진 풀을 다 먹을 수 있는 소라는 뜻으로, 풍족한 형편에 놓임), '도둑놈 소 몰 듯'(당황하여 황급히 서두름) 등 많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소를 '생구'(生口)라 불렀다. 우리말에서 '식구'(食口)가 가족이라면 생구는 한집에 사는 식솔을 말했는데, 그만큼 소를 소중히 여겼다는 뜻이다. 소 없이는 농사가 힘들었고 또 소값이 비싸서 재산으로서도 큰 구실을 한 탓이다. 소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지금도 소값은 금값이어서 이래저래 대접받는 생구 노릇을 한다. 요즘 베트남엔 이란 것이 있어 극빈자들에게 암소 한 마리를 빌려줘서 경제고를 해결한다고 하니 어디든 소는 글로벌 생구라 할 만하다.
1989년 小史
▷임수경 밀입국 파동=한국 외국어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수경이 독일 베를린을 거쳐 평양에 밀입국해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해 김일성을 만나고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다.
▷동의대서 경찰 7명 사망=5월 3일 부산 동의대생들이 도서관으로 진입하는 경찰을 저지하기 위해 던진 화염병이 대형화재로 번져 경찰관 7명이 숨지고 학생과 경찰 11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가족법 30년 만에 개정=민법 중 친족 상속편이 제정 30여 년 만에 대폭 개정됐다.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던 법을 개정해 호주 상속제를 호주 승계제로 바꾸고, 이혼 시 여성에게도 재산 분할권과 자녀에 대한 친권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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